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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Apr 06. 2022

[픽션] 그녀와 달과 화분

결혼 2주년을 기념하며, 나의 '이쁜 여자'에게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일반보다 돌출되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광대뼈, 운석이 대기권을 뚫고 착지한 것 같은 넓고 많은 모공과 기미.


그녀의 눈을 바라본다. 바늘처럼 날카롭게 쭉 찢어져서 1시 50분을 가리키듯 위로 올라간 미운 눈매. 작고 보잘것없는 눈동자.


그녀의 몸을 바라본다. 볼륨감 없는 가슴과 아름답지도 않고 툭 튀어나온 오리 궁둥이,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자신의 기대 이하였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을까, 이렇게 못난 나를 사랑해줄 사람이 나타나기는 할까, 아니 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


일을 마치고 작은 집보다 더 좁은 자신의 방안에 들어와 뚫린 창가에 앉아 넓은 잎사귀를 갖고 튼튼하고 자신감 있게 곧게 뻗은 그 식물을 바라본다. 일개 이름 모를 잡초마저도 나보다 잘났다, 빌어먹을.


그녀는 연보랏빛 하늘에 오늘도 어김없이 나타난 달을 바라보았다. 해가 저물어가도 그 얇은 몸에서 빛을 내뿜으며 그녀의 방과 그녀를 어루만진다, 그녀의 그림자마저도 달빛은 감싸고 껴안는다.


바람이 차가운 밤에도 달빛은 눈부시고 따뜻하다. 참 이상하다, 그녀는 달빛에게도 무엇하나 해준 것이 없지만 달빛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그녀를 바라봐주었다.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상처받고 싶지 않아, 이제 그만해.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잖아. 못생겼다고 비웃고 상처 주고 또 그 잘난 입방아로 나를 빻아 죽이겠지.'


'아니야. 나는 그러지 않을 거야.'


출처 - instagram.com/brush_ieun


'거짓말하지 마. 너도 다른 인간들과 똑같아. 믿지 않을 거야.'


'아니야, 거짓말이 아니야. 나는 네가 태어났을 때부터 너와 이어졌어, 그때부터 너를 바라보며 살아왔는걸.'


'뭐라고? 너는 하늘의 존재이고 나는 땅의 사람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너를 지켜봐 주는 이 빛은 내가 너에게 주는 것이 아니야. 나를 비추어주는 존재가 있기에, 나도 너를 비출 수 있어. 나의 빛은 모두 그분으로부터 오는 것이란다,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계신 그분 말이야.'


'무슨 말이야? 이해하지 못하겠어.'


'이해할 필요 없어. 그저 누군가가 너를 가장 사랑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렴. 삶이 항상 행복하지는 않았지? 하지만 이제 고달프지만도 않게 될 거야. 나는 알 수 있어.'


'알았어. 그저 사람들의 시선과 입방아로 아프지 않을 수만 있다면, 너의 말을 받아들일게.'


'좋아, 네가 지금 말한 대로 이루어질 거야. 너는 너의 행복과 기쁨을 더 크게 나누게 될 것이고, 너의 슬픔은 반으로 나눌게 될 거야, 더 작게 그리고 짧게. 자, 나를 바라보렴'


그녀는 고개를 들어 달을 빤히, 눈을 최대한 크게 뜨고 바라보았다.


'네가 달을 바라볼 때에, 너를 그리는 너의 사랑도 너를 바라보고 있단다. 너는 사랑받을 존재야. 나의 소중한 사랑.'


하늘에서 뿜어져내려 오던 달빛이 그녀를 눈부시게 감싸 안았고 그녀는 아침의 햇살이 커튼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침대에서 눈을 떴다. 혼자 누워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내 자신이 누군가의 품에 안겨 따뜻함을 누리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방안의 구석에 자신보다 더 잘나게 보였던 곧고 넓은 식물은 이미 사라져 있었고, 자신은 자신의 뺨에 입맞춤을 하는 어느 존재와 누워있었다.


"잘 잤어? 오늘은 또 무슨 꿈을 꾼 거야? 잠결에 중얼중얼거리던데."


앞머리를 잎사귀처럼 넓게 내린 그가 소곤거리며 그녀의 귀를 간지럽혔다.


"잘 기억은 안 나. 그냥 옛날 기억의 한 장면이었던 것 같아."


"그랬어?"


다시 그의 따뜻한 입맞춤, 그녀의 뺨에.


"네가 잘 잤으면 됐어, 상관없어. 어제도 좀 늦게 잤으니까, 조금 더 자. 내 이쁜, 소중한 사랑"


"응.."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다, 어둡지만 밝은 달빛의 세상이 펼쳐졌다. 꿈속에서 다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녀가 다시 잠드는 것을 보며, 그는 그녀의 머리와, 이마와, 뺨과, 입술에 입을 맞추며 중얼거렸다.


"오늘도 이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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