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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Apr 10. 2022

코로나지만 피자는 먹고 싶어

건강한 미식가의 코로나 체험기

나는 배달과 침묵으로 이루어진 긴 한 주를 보내고 이제야 인사를 할 수 있게 되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아는 사람들은 알다시피 나의 직업은 코로나를 비롯한 온갖 감염병을 잘 마주치고 걸리기 쉬운 직종이기 때문에, 이번 오미크론 코로나도 나를 자주 마주쳤지만 나에게 덤벼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나의 오만을 보기 좋게 비웃는 꼴을 당하고 돌아왔다.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어느 날, 갑자기, 그냥 날이 건조해서 목이 조금 칼칼한 느낌이 드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다음날부터는 말하기가 힘들 정도로 목이 아프니 나는 속으로 '아, 비로소 나는 걸려버렸구나'하고 생각했다.

만약 걸리게 된다면 적어도 1달 반 동안은 지긋지긋한 보건소에 코를 면봉으로 쑤시러 가지 않아도 되고 비교적 재감염률이 낮아지게 되겠지만 며칠 동안은 힘듬을 감내해야 하는 일, 나만 감염되었을 줄 알았지만 나와 한집에서 사는 나의 이쁜 여자도 금방 감염되어버린 것이었다.


그랬다, 우리는 5일 정도 집에서만 지냈다(우리는 이것을 '격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코로나에 감염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장 출근이 어느 정도 허용되어있는 직업인 나와는 다르게 그렇지 않은 이쁜 여자는 집에서만 5일을 지냈고 우리는 덕분에 반강제적인 둘만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 우리가 코로나를 감염되면서 걱정했던 것은 어떠한 후유증이 우리를 덮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대체적으로는 후각, 미각의 상실과 기침, 인후통, 만성 피로 등 다양했지만 먹고 마시는 것을 즐거이 하는 우리들에게 후각과 미각의 상실이라는 것은 거의 사망선고임에 다름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3차 백신과 부스터 샷이라는 방어막을 몸에 잘 두르고 있었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후유증은 발생하지 않는다. 식문화를 즐기는 이로써 냄새와 맛을 볼 수 없게 된다면 여한이 많은 삶이었을 뻔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신체가 감염병으로부터 빠르고 힘차게 벗어나고 싶었는지 식욕이 우리의 대뇌를 지배했던 것이다.


직장의 점심시간에도 따로 식사를 하면서도 제육볶음과 김치 돼지구이와 들깨 미역국 등등이 정말 맛있었고, 집에 와서는 치즈와 고기와 토마토소스와 탄수화물들이 강하게 나의 욕구를 자극했다. 그렇다, 내가 가장 선호하는 음식 종류 중의 하나인 이탈리안 빈대떡이 나의 영혼에게 부르짖고 있었다. 처음 머릿속에 떠오른 메뉴는 샌마르의 마르더베스트 피자에 재료들을 두배로 더한 '마르더블'피자였다. 쫄깃한 피자, 매콤하고 향미 가득한 고기, 진하고 감칠맛 넘치는 토마토에 두툼하고 쫄깃한 도우가 생각났다, 배달을 시키는 김에 마늘마요네즈도 잔뜩 시켜서 남는 피자도우를 찍어먹는 바람직한 생각도 나를 기쁘게 했다.


샌마르의 마르더블피자


매콤하고 기름기가 자르르한 그 피자가 어찌 그리 맛있던지, 잠시 잠을 자고 있던 이쁜 여자가 눈을 감고 있는 것을 틈 타 그 큰 피자 한판을 다 먹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아주 무섭고 두려운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에 피자의 60%를 먹으려고 움직이던 나의 오른손을 강하게 억제하고는 그 사이에 일어난 이쁜 여자에게 피자 박스를 인계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배달이 가능했다면 마르게리따 피자도 추가로 주문했을지도.


다음 날에도 역시나 나는 피자의 영혼이 나의 마음을 강하게 당기고 있음을 느꼈지만 아쉽게도 화요일이었다. 강릉에서 화요일이라는 것은 많은 매장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귀중한 휴일을 뜻한다, 하지만 그 사이로 내가 좋아하는 다른 피자집이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코로나에도 잊지 않았다. 택지에 있는 두툼하고 푹신한 도우를 자랑하는 스퀘어 피자가 있는 것이다. 바삭바삭하고 구수하며 쫄깃한 치즈와 도우의 협조, 진하고 풍부한 풍미의 토마토소스, 그 위로 적절하게 구워진 토핑과 담백하고 부드러운 랜치 소스를 자랑하는 디트로이트 오리지널 피자에 고구마칩, 그리고 촉촉하며 바삭한 양송이 튀김을 곁들여 추가로 주문하니 30분 후에는 우리 집 식탁에 디트로이트풍 식사가 완성되어있었다.


스퀘어피자의 디트로이트 오리지널, 고구마 튀김, (이미 다 먹고 없는) 양송이 튀김


촉촉하고 사각거리는 양송이의 육질에 요거트소스, 바삭하고 달콤한 고구마튀김과 묵직하고 중후한 미국맛을 자랑하는 피자가 함께하니 코로나로 인하여 식욕이 자극된 것이 생각보다는 행복했다. 특히나 오래간만에 치아와 혀로 느껴보는 디트로이트피자 특유의 바싹 구워진 피자치즈엣지가 두배로 맛있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 배달된 코로나 격리 환자용 구호식량이 도착하면서 컵밥, 레토르트 육개장과 곰탕 등 즐겁고 간단한 식사로 우리는 격리를 마무리했다. 그렇다, 최근 5일은 상당히 맛있는 기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다시 코로나에 걸리고 싶지는 않다. 나는 어느 정도 바깥과의 왕래가 가능했지만 나의 가엾은 동거인은 집에서 나가지 못한 채 바깥세상에서 잠시 '로그 아웃'을 했기 대문에 썩 유쾌한 일은 아닌 것이다. 괴상한 후유증인 '식욕 폭발'로 인하여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었지만 그것은 격리 중에 그나마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유희에 불과했으니까, 소소한 위안거리였다.


우리가 주변에서 듣고 보는 것은 코로나 감염병으로 인한 슬프고 괴로운 일들 투성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요'라고 얘기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것이지만, 내 몸에 어떠한 부정적인 사건이 남게 될지 걱정하고 두렵게 되는 것보다는 안 걸리고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안전하게 사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은 코로나 예방하며 건강을 잘 지키시는 생활 하시고,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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