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보다 어려운 건,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
이곳에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알아보는 단골들이 생겼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영국 사람들은 친절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준다.
나이, 직업, 인종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몇 살이고, 어떤 일을 하고,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어떻게 생겼는지와 상관없이 ‘지금 여기 있는 나’를 존중하며 대한다.
개인적인 질문으로 불편하게 만들지도 않고,
나를 평가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와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나누고, 따뜻하게 인사를 건네는 순간이 반복될 뿐이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든다.
언어의 문제도 크다. 단골들이 차별 없이 나를 바라보는 것과 달리,
나는 내 마음속에서 나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사람들을 특정한 잣대로 나누어 본다.
영어를 사용하는 순간, 나는 내가 말하는 방식으로 나를 판단할까 봐 걱정한다.
영어를 못하니 능력이 부족한 사람처럼 보일까, 대화가 어색해지면 나만 불편할까,
그래서 더 숨게 된다.
한국에서 생활할 때도 나는 늘 내 모습을 부끄러워하며 숨어들었는데,
영어를 써야 하는 이곳에서는 그 마음이 더 깊어진다.
내가 정해놓은 완벽한 모습에 나를 맞추려고
현재의 나를 부끄러워 하는게 너무 속상하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생각하든 말든 무슨 상관인데.
다른 사람에게 잘 보여서 뭘 얻을건데.
스스로에게 이렇게 상처주면서
나를 드러내기 싫어서 자꾸 입막음 하고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게 너무 속상하다.
말 한마디, 웃음 한 번에도 긴장이 따른다.
하지만 스윗한 단골들은 다르다.
일터가 아닌 곳에서 만나도 먼저 인사하고,
알아봐 주며, 안부를 물어준다.
부족하고 못난 나를 알아봐 준 것만으로도 나는 필요 이상으로 고마워하고, 마음 깊이 감동한다.
그 감정은 때때로 과하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위로해 준다.
그들이 보여주는 작은 친절과 인정은 나에게 큰 힘이 된다.
언어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에서의 습관과 완벽주의, 타인을 지나치게 신경 쓰며 나를 방치하는 패턴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다.
아시아인, 영어가 원어민이 아닌 사람으로서 한 단어만 말해도 다 드러날텐데,
왜 나는 아직도 나를 부끄러워할까? 왜 아직도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걸까?
매일 조금씩 나를 위해 노력하지만, 변화가 바로 느껴지지 않아 답답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
따뜻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 덕분에 나는 계속 애쓰고,
속상해도 마음을 다잡는다.
나 자신에게 기대고, 때로는 무너지면서도 다시 일어서려는 나를 발견한다.
그럴 때, 스스로를 조금 더 따뜻하게 바라보고 안아주면 좋겠다.
눈물짓고 있는 나에게 “괜찮아, 지금 모습 그대로도 충분히 빛나고 아름다워”라고 말해주는 것처럼.
완벽하지 않아도, 서툴러도, 오늘의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안아주는 마음.
그것이 진짜 사랑이라는 걸 조금씩 배워가는 중이다.
이런 날이 계속되진 않을 거다.
인생은 오르내림이 있는 법.
오늘의 눈물과 내일의 웃음,
한숨과 설렘 모두 나를 만드는 과정임을 기억하며,
나는 오늘도 나를 조금 더 사랑하려 한다.
어쩌면 사랑을 배우는 일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만큼 어렵고, 서툴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 나를 향해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임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