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없이 사는 건 익숙한데, 에어컨 없이는 글쎄…
요즘 내가 제일 자주 말 거는 존재는 에어컨이다.
“너 없이도 괜찮아. 나, 잘 살 수 있어.”
(1분 후)
“살 수 있긴 한데... 덥다고. 미안해, 내가 경솔했어..”
(삑—)
살면서 사람한테도 그렇게 말해본 적이 없는데,
에어컨한텐 하루에도 몇 번씩 고백 중이다.
혼자 사는 여름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덥고, 습하고, 귀찮고,
그리고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누가 있으면 “덥다” 소리라도 내뱉을 텐데,
혼자 있으면 덥다는 말도 목소리로 꺼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요즘,
소파에 반쯤 누운 채
배를 긁적이며 TV 속 영화 자막을 따라 읽거나,
아무 의미 없이 리모컨을 들었다 놨다 하며
에어컨을 바라본다.
틀면 전기요금 걱정.
안 틀면 체온 걱정.
그래도 결국은 틀게 된다.
땀이 이마를 타고 내려오는 순간,
내가 먼저 무너진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다.
“그래, 네가 이겼어.”
한 번은 ‘전기요금 아끼기 프로젝트’를 결심하고
이틀간 선풍기만으로 버텨보려 했다.
처음엔 잘 되는 듯했다.
하지만 낮 2시, 후끈한 거실에서 정신이 몽롱해졌고,
내 손은 이미 리모컨을 들고 있었다.
그때 내가 중얼거렸다.
“그래... 역시 난 강한 사람이 아니었어. 돈이 뭣이 중한디~”
그리고 ‘삑—’
그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요즘 나의 최대 사치는
에어컨 틀어놓고 이불 덮고 낮잠 자는 거다.
약간 춥다 싶으면 기분이 좋다.
“아, 이런 게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돈 쓰는 느낌인가?"
그래도 괜찮다.
누가 뭐라 할 사람도 없고,
누구 눈치 볼 일도 없다.
그런데 가끔은 이상하게
에어컨보다 따뜻한 무언가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선풍기 옆에 놓인 물컵이 미지근해질 무렵,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에어컨 틀었을 뿐인데, 내가 왜 이렇게 말을 많이 하냐. 나 혹시… 여름형 중2병?”
혼자인데 더 덥고,
덥다 보니 괜히 더 외로운 듯도 하고.
그래도 또 웃긴다.
에어컨한테 말 걸고 있는 내가 말이다.
"뭐, 근데 이제는 말 안 걸면 서운할 정도다."
이 여름을 잘 버텨보자.
삑— 하는 소리에 위로받아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