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사람의 여름은 늘 오버 사이즈.
마트에서 수박을 봤다.
커다랗고 시원해 보이고, 왠지… 여름엔 저걸 먹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계획은 완벽했다.
반 통은 냉장고에 넣고, 나머지 반은 오늘 다 먹는 거다.
나는 계산대에서 비장하게 말했다.
“봉투 안 주셔도 돼요. 제가 그냥 들고 갈게요.”
…그리고 후회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시작됐다.
1.수박이 너무 크다.
→ 냉장고 문이 안 닫힌다.
2.도마에 안 올라간다.
→ 칼질 중에 수박이 미끄러져서 싱크대에 머리 박음.
3.한 조각, 두 조각 먹다 보니… 생각보다 금방 배부르다.
→ “이걸… 혼자 반 통이나 먹으려고 했던 내가 대단하긴 하다.”
결국 몇 조각만 먹고 나머지는 밀폐용기에 옮겼다.
예상 외로 금방 질린 달콤함,
냉장고 안에서 자리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부피,
그리고 맨발로 밟은 수박즙의 끈적함…
어릴 때는 수박이 그렇게 귀하고 맛있었는데,
지금은 내 입맛보다 냉장고 용량이 더 중요하다.
수박은 시원하지만, 내가 치울 걸 생각하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게다가 혼자 먹는 수박은… 뭐랄까,
절반쯤 남은 감정처럼 묘하게 허전하다.
티브이 앞에서 수박 한 조각 들고 앉아 있는데,
마주 앉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수박보다 더 시원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이건 감성 탓이다.
실제로는 아무도 없으니까 수박을 들고 정자세로 앉아
입에 문 채 눈치 안 보고, 씨를 뱉을 때 소리 내도 되니까 편하긴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밤, 수박 반 통을 냉장고에 밀어 넣으며
기억해두기로 했다.
혼자 사는 사람은 반 통도 많다.
작은 조각,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그걸 사는 게 정답이었다.
하지만… 그건 좀 ‘여름을 산 느낌’이 덜 나잖아.
무릎에 수박 한 조각 올리고, 티셔츠에 수박물 흘리면서 먹는 그 감성…
그것 때문에 이 고생을 자처한 거였다.
결국 오늘 밤,
나는 배를 문지르며 냉장고 앞에서 다짐한다.
“내년 여름엔…
꼭 누군가랑 수박 한 통을 나눠 먹고 싶다.”
그리고 바로 뒤에 혼잣말이 따라온다.
“아니지.
그 전에 냉장고부터 바꾸자.”
…근데 내가 이 생각, 작년에도 했던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