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덥고, 나는 뛰었고, 살은 남았다

나를 오래 품어준 지방과 작별하려 했는데, 정작 떠난 건 무릎이었다

by 기억상자

퇴근 후, 나는 결심했다.
여름이다.
땀도 많이 나고,
움직이기만 해도 칼로리가 펑펑 타들어간다고 하지 않던가.

거기다 요즘 나오는 기사는 다 이렇다.


‘30분 걷기, 밥 반 공기 칼로리 태움’
‘러닝 1시간 = 치킨 1조각’


그래서, 퇴근 후 나는 러닝을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여름이 끝날 때쯤엔
누가 봐도 나의 오랜 벗 지방과 아쉽지만.. 이별한 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땀이 줄줄…)


첫날, 나는 뛰었다.

퇴근은 오후 세 시.
집에 돌아와 잠시 휴식을 가지고 어떻게 달릴 것 인가에 대해 깊은 고뇌를..


잠깐 생각했다고 느꼈는데, 창밖이 노을로 물들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이런 하늘 아래에서 달리는 내 모습, 분명 멋질 거야.

이어폰을 꽂고,
서울 청계천도 부럽지 않은,

집 앞 20km짜리 잘 정돈된 계천 산책길을 달렸다.

노을빛에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고,
그 길게 늘어진 그림자가…
생각보다 꽤 괜찮아 보였다.

(간혹 반대편에서 혼자 뛰는 고독한 러너 한 명이 지나가면,

아무 말도 없었지만 우리는 알았다.

"우리, 지금 좀 멋진 듯."

그런 느낌의… 서로를 존중하는 침묵의 러닝 스웨거.)


괜히 자세를 한 번 고쳐 잡았고,
속도도 살짝 조절해 봤다.


땀은 흐르는데, 기분은 묘하게 벅찼다.

그때까진…


10분쯤 뛰니까 다리가 조금 무겁고
15분쯤 뛰니까 심장이 외쳤다.


“살려는 드릴게.”


20분쯤 뛰니까
내 영혼이 돌아서며 말했다.


“나… 집에 돌아 갈래…”


1시간 정도 뛰고 나서, 나는 셀카를 찍었다.

운동 후 뿌듯한 인증샷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얼굴은 익은 토마토였고, 셀카 앵글은 내 턱살을 배신했다.


그렇게 며 칠이 흐른 뒤..
근육통?
그건 애교였다.
문제는 무릎.

걸을 때마다


“계단 내려가는데, 무릎이 살짝 망설이더라.”
“걷고는 있는데… 내 다리끼리 합이 안 맞아.”


계단은 적이었고,
의자는 반가운 연인이 되었다.

몸무게는 그대로였고,
유일하게 줄어든 건 의욕.


결론
살은 쉽게 안 빠진다.
특히 퇴근 후,
배고프고 피곤하고 더울 때 시작한 러닝은
살 대신, 나의 무릎과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민 중이다.

내일부터는 러닝 대신, 런닝맨이나 볼까 싶다고.

어차피 뛰는 건 똑같으니까.

뛸 사람은 뛰고, 나는 감상한다. 그들의 땀을.


…이런 게 정신승리인가. 모르겠다. 근데 편하긴 할 것 같다.


그리고 난 베란다에서 계천 산책길을 내려다보며

고독한 러너들의 모습을 감상하며 나갈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다.


오늘따라 왜 이리 습하고 더운지.. 이런 날 뛰면 건강에 해롭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