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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응지음이지영 Jun 25. 2021

여름의 체온

저는 미라클 모닝을 하고 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고요하게 할 일을 하고 있으면 그 혼자만의 자유로운 시간이 개운하고 뿌듯해서 계속해서 새벽에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요즘은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깨고도 막상 일어나려는 순간 뜬 눈으로 잠시 망설입니다. 더 자고 싶을 때도 있고 귀찮을 때도 있습니다만 그런 것과는 조금 다른 이유를 고백하려고 합니다. 다 큰 어른에게 갖다 붙이기엔 조금 우스운 이야기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저는 이것 때문에 여름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화장실이나 주방 근처에서 벌레를 만날까 봐 두렵습니다. 그러니, 여름이 다가오면 조금씩 긴장이 되기 시작합니다. 여름은 특히나 벌레들이 많은 계절이니까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현실적인 육아 조언을 해오는 주변 사람들에게 '벌레를 못 잡는다'라고 말하면 어쩐지 '스킬 하나가 부족한' 엄마 취급을 받습니다. 만약 아이 옆에 바퀴벌레라도 지나가면 발견 즉시 '때려잡아야' 하는데, 그걸 못하면 어찌하느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지요. 엄마라면 아이를 위해 언제든 두려움을 이겨내고 물리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데, 무서워하면 아이를 지킬 수 없다는 겁니다. 저보다 몇 년 일찍 아기 엄마가 된 '선배맘'인 친구에게서 위로 삼아 돌아오는 말은 이랬습니다. "너도 막상 그런 상황이 오면 다를 걸? '엄마'잖아."


그러고 보니, 정말로 그런 상황이 제게도 왔습니다. 모기 기피제 외에는 해충 퇴치약을 따로 사용하지 않는지라 미리 구비해 둔 파리채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릅니다. 손잡이는 길면 길수록 좋았겠습니다만 긴급한 상황인지라, 파리채 쳐다 볼 시간이 더는 없었습니다. '그 놈'이 눈앞에 있을 때 끝장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다른 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엄마라는 이름을 걸고 용감하게 때려잡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발끝부터 닭살이 돋고 머리카락이 쭈뼛 서던 그때의 감각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름을 싫어하는 이유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더위를 잘 타고 땀 흘리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아이 엄마가 되기 전에도 그랬지만, 육아하느라 아이들 챙기는 것만 해도 체력적으로 지치는데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아래 공기는 잠시 숨 돌리기에도 너무나 묵직합니다. 덥고 습한 공기는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짱짱하게 집을 나서던 나의 활기가 촛농처럼 뭉그러져 녹아내리는 듯합니다. 두 어깨 위에 나란히 스며들어 점차 심장박동에까지 쫓아와 이제 그만 들뜨라고 압박하는 듯합니다.


한낮의 하굣길입니다. 아이는 엄마를 부르며 와락!! 안깁니다. 몸이 휘청,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습니다. 어디서부터 뛰어다니다 왔는지 이마엔 땀방울이 맺혀있고 목덜미와 짧은 소매 아래는 짭짤한 땀이 슴슴 나와 미끌미끌합니다. 큰소리로 친구들 이름을 부르며 엄마를 안고 흔듭니다. 걸음마 떼던 3살짜리 꼬마가 이젠 버티기 힘들 정도로 힘이 셉니다. 이 더위보다 강한 장사가 하나둘씩 보입니다. '그동안 잘 먹긴 했나 보다', 뿌듯할 새도 없이 아이는 친구들과 향할 놀이터를 정했습니다. 엄마는 아이 친구 엄마들과 놀이터에 함께 갑니다.


신영복 선생님께서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 남기신 '여름 징역'이라는 표현이 떠오릅니다.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C의 열 덩이로만 느끼게 한다."


겨울에는친밀감의 표현으로 서로의 체온을 나누기 위해 일부러 가까워기도 하지만, 반대로 여름에는 상대와 나의 존재만으로 서로에게 불쾌감을 느낍니다. 좋아하는 사람이건 싫어하는 사람이건 상관없이 너도 나도 물리적으로 가까워짐을 기피하게 된답니다. 그러니, 자연스러운 겁니다. 땀범벅인 된 아이와의 포옹이 달갑지만은 않은 것은, 아이가 섭섭해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숨쉬기도 묵직한 공기를 잘도 뚫고, 갓 초등학생이 된 8살의 아이들은 이리로 저리로 내달립니다. 송충이나 개미떼를 보면 친구들도 같이 보자고 온 동네 떠나가라 소리를 뻗어냅니다. 뜨겁고 땀나고 벌레 많아서 싫은 여름이지만 한편으로는 설렙니다. 피서는 어디로 갈까, 궁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여름날이 제게도 빛나 보이는 건, 타인의 체온에도 서슴없이 다정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있어서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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