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등산

애기봉의 추억

by 게으른 산책가

2021.04.24 토요일


해가 딱 머리 위에 뜬 그때, 아는 언니와 산에 갔다. 올봄, 애기봉을 우연히 알게 된 후로 산행은 왜 하는지 알게 됐다. 적당한 고통이어서 오를 만했고, 내려올 때 훈장 하나 받은 것처럼 들뜬 목소리로 내려오는 일. 그게 등산의 즐거움이었다.


애기봉을 오르는 내내 나무 그늘 속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머리 위에서 내리꽂을 직사광선이 아니어도 산속에는 열기가 비처럼 내렸다. 바람 없는 산속으로 내리는 ‘열기 비’는 수직으로 내리꽂았다. 그나마 반짝이는 나뭇잎이 대신 받아주고 키 큰 미루나무가 미리 쳐내줘서 다행인 것이다.


둥둥 떠다니는 솜털은 숲으로 비치는 햇살에 드러났다. 저건 뭘까. 들이마시면 컥컥 댈까 봐 마스크를 썼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다. 눈, 코, 입이 안전하다고 느껴서일까? 솜털은 숲 속 요정 같았다. 앞뒤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머리에서 느끼는 데로 입으로 내뿜는다. 이러면 하루가 지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거든.

“숲 속 요정이 둥둥 떠다니네요.”

바람도 고요한 숲인 줄 알았는데, 솜털요정을 보니 작은 바람이 일고 있었다. 솜털요정은 이런 날을 고르길 잘했다. 찬찬히 숲을 즐기기 좋은 날이야, 저기 다람쥐도 있고 말이지.


오르막의 고비를 넘기면 편안한 능선이 나온다. 거기부터 끊어졌던 대화를 즐길 수 있다. 어느 카페보다 즐겁게 대화할 수 있는 오솔길이 나타났다. 카페의 블랙체리 향이 좋다한들, 소나무와 흙냄새를 이길 수 없다. 잔잔한 음악이 옆테이블 대화를 가려주는 카페라면 숲은 일부러 귓바퀴를 모아서 새소리를 찾아 나선다.


애기봉에 도착, 우린 무얼 했던가. 서두르지 않으면 브레이크 타임으로 점심을 거를 수도 있지만, 정상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나는 누워서) 바람을 쐬었다. 팔뚝과 얼굴은 땀이 퐁퐁 나왔다. 자가발전으로 흘린 땀은 올해 처음이다. 한참을 우린 점심도 포기한 채, 지한(땀을 멈추기 위한)을 위한 바람을 맞는다.


“언니 돌아오는 토요일은 학습지 수업이 근로자의 날이라 쉬니까 8시에 올까요?”

천은사에 반해서 새벽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이번엔 이른 아침의 애기봉이 궁금했다. 건강한 호기심은 참을 필요가 없다. 비록 지금은 무릎이 조금 아프지만 돌아오는 아침 산행을 생각하니 또 들뜬다.


참, 이날 산에서 본 구름을 표현하고 싶었다. ‘솜사탕 같은 구름’을 누가 먼저 썼는지 모르지만, 구름을 위한 자동화된 이 표현에 다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어제, 오늘 자꾸만 나만의 구름표현이 갖고 싶다. 음, 솜 말고 뭐 없나? 요즘 민들레도 구름을 만들어서 풀 위에 둥둥 떠있던데, 내 구름을 갖고 말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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