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시꽃 필 무렵

여름 이야기 2

by 게으른 산책가


*접시꽃은 6월부터 8월까지 피는 꽃이다. 여름을 알리는 꽃은 몇 가지 있지만 접시꽃만큼 서정적인 꽃도 드물다. 접시꽃과 비슷한 결을 가진 꽃은 봉숭아, 맨드라미, 채송화 등등이다. 초여름날 산수 시간에는 구구단 외는 소리가 한창이다. 그런 어느 날을 쓴 글이다.



이 일은 이, 이이는 사, 이삼은 육, 이사 팔......


두 팔은 단정하게 다리 위에 얹고, 삼십여 명의 아이들은 칠판에 적힌 구구단을 보며 이구동성 외친다. 박자를 놓친 아이는 잠시 입만 벙긋대다가 큰 줄넘기 대열에 들어가듯 잽싸게 박자를 따라잡는다. 이일‘은’ 이, 이이‘는’ 사... 조사가 붙는 불특정 한 규칙과 함께 선생님 구령에 따를 뿐이다.


초여름 날, 아홉 살의 산수 시간은 이제 손가락만 가지고는 제때 하교할 수 없게 됐다. 이단 외우기가 숙제다. 나는 곱하기의 배후가 더하기임을 이해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구구단 외우는 비법을 알려주셨다. 그대로만 하면 된다고 했다.

“화장실에서 똥 쌀 때도 입에 붙도록 달달 외우면 된다, 알았지?”

아주 단순했다. 외워오지 않으면 제때 집에 보내주지 않겠다는 선생님의 으름장은 빽빽한 내 일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동네 언니, 오빠들을 따라서 산에 가야 하는데, 들에 가야 하는데, 냇가 가야 하는데 선생님은 저런 얄미운 말을 하다니.


친구들과 일렬횡대로 손을 잡고서 집으로 향한다. 물론 선생님의 협박은 뚜렷한 효과가 있었다. 친구 중에 공부 잘하는 선우가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한다. 아빠가 농협 직원인 그 아이는 농사꾼 아빠를 둔 나와 많이 달랐다. 옷소매는 깔끔했고, 머리는 분무를 한 뒤 빗질을 하여 땋았는지 송송한 잔머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선우의 엄마는 선우가 학교에서 무얼 배웠는지 궁금해했다. 엄마의 관심을 받는 방법은 아빠가 봉급쟁이여야 했다. 우리 집을 가기 전, 친구 여럿이 선우 집에 들렀다. 담장 너머, 접시꽃이 보인다. 그리고 재잘거리는 우리들 목소리를 듣고 일어선 선우 엄마도 보인다. 마당의 풀을 뽑고 계셨다.


“어서 와라. 미숫가루 타 줄까?”


역시 봉급쟁이 아빠를 둔 선우 네는 우리 집과 다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숫가루에 얼음이 떠있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에나 맛보던 고드름 같은 얼음, 한입에 넣고 하늘을 향해 ‘하아’ 입김을 낸 뒤, 입을 벌린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우물거리다가 우두둑 씹어 먹는다. 미숫가루보다 얼음이 몇 개 남았는지 헤아려본다. 어금니에서 경쾌하게 깨지는 얼음에 중독될 것만 같은데 다행히 중독될 형편이 안 되는 농사꾼 딸이다.


“얘들아, 구구단 외우자.”


선우 집에 있는 종이 인형을 가지고 놀고 싶었는데, 역시 엄마의 간섭을 받고 자란 친구는 다르구나. 내 종이인형은 목이 덜렁덜렁해서 목 뒤에 종이를 오려 붙였다. 종이인형 세계에서 잦은 변신의 대가는 위험하다. 흥청들과 놀다가 결국 망한 연산군처럼 종이인형은 얼굴만 예쁘지 몸은 엉망이 될 수밖에 없다. 선우는 새로 샀을까, 캔디 종이인형은 어디 하나 구겨진 데가 없다. 그래, 캔디와 함께 하려면 어서 외우자.


숙제를 마치고 실컷 종이인형을 가지고 논 뒤 집으로 향했다. 우리 집 돌담 위로 키 큰 접시꽃이 보인다. 농사꾼 아내는 역시 바쁘다. 퇴근 시간은 해의 퇴근시간과 같다. 난 그래도 즐겁다. 똥 쌀 때조차 구구단을 외울 필요가 없으니까. 어제 파다 만 마당 구석으로 달려갔다. 묶인 개도 땅을 파고 나도 땅을 판다. 할머니는 땅을 파는 개를 혼내주러 싸리비를 들고 나선다. 할머니의 언어를 눈치챘는지 개는 꼬리를 다리 사이에 넣고 귀를 딱 내려 붙인다. 나도 개만큼은 눈치가 있었는지 얼른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할머니는 무섭지 않지만, 잔소리를 듣다 보면 어렵게 외운 구구단이 모두 빠져나갈지도 모르니깐.


우리 집 접시꽃은 풀을 뽑아주지 않아도 물을 주지 않아도 선우네 접시꽃과 다르지 않았다. 뭐, 나도 선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농사꾼이 대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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