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라보는 그곳

비 맞고 히죽대던 그날

by 게으른 산책가

그날이 왔다. 내가 싫어하는 오르막길, 누가 하라고 하면 사양하던 그 길을 스스로 걷겠다고 했으니, 어길 수가 없다.


아무튼 시리즈의 ‘산’을 읽었다. 실은 절반 읽었다. 등산 초보인 저자는 연습 없이 무려 지리산에 도전하고 전국의 명산에 올랐다. 나중에는 히말라야까지 도전하는 저자를 보고 충동이 일었다. 방구석에서 편하게 글로 읽는 동안은 무슨 충동인들 쉽게 일지 않을까.


오늘 오르는 오르막길은 고작 7분 거리다. 그럼에도 난 이 길의 경사는 40도는 넘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친절하게도 경사도 안내표지판이 있다. 이제 누군가에게 짐작하여 자랑할 수도 없다.

‘난 경사도가 40도인 길을 매일 걷는다니까?’


아무리 봐도 표지판 경사도는 믿을 수 없다. 멀리서 이 길을 보니 연장선은 삐뚤어져 있다. 중간에 경사도는 더 급한 게 보였다. 왜 거기엔 표지판이 없냐고?


쭈그리고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역시 그 욕구가 생겼다.

‘아, 데굴데굴 굴러서 내려가고 싶다.’

멀리 보이는 목적지를 바라보며 걸었다. 하지만 중간쯤 왔을 때 깨닫는다. 매번 그 지점에서 나는 바닥을 보고 걷는다. 또는 옆에 있는 산을 보고 걷는다. 그러면 덜 힘들게 도착할 수 있다. 내가 가야 할 목적지가 아득하다고 느낄 때, 발은 멈추지 말라. 다만 시선은 목적지에 꽂아두지 않겠다. 한눈파는 사이에 시간은 용케 지나가거든.


드디어 평평한 길. 숨이 편해졌다. 후우- 한번 내쉬고 스읍-들이마신다. 맛있는 푸른 공기를 마실수록 머릿속은 깨끗해진다. 뒤통수에서 경쾌한 소리가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투명한 빗물 색이 사선을 그리고 있다. 빗물 색은 내 눈엔 보이고 카메라엔 찍히지 않는다. 겨우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비라니.


칡잎을 떼어내 머리에 썼다. 칡잎에 떨어지는 빗소리 박자가 들린다. 오선지에 그려낼 수 없는 박자에 웃음이 났다. 하지만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가 보인다. 얼른 웃음을 감춰야 했다. 비 맞는 여자가 히죽거리면 안 된다는 것, 심지어 비 맞아서 화났다는 퍼포먼스까지 했다. 나를 보고 관객은 ‘비 맞아서 화났나 봐.’라고 연상할 수 있도록 칡잎을 내팽개치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차가 지나가자마자? 다시 실실 거리며 웃었다는.


비 맞는 해방감을 아는데 우연찮게 만났으니, 누려야지.



이틀 전 산책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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