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지기로 작정한 날

올 게 왔다, 늦가을

by 게으른 산책가

바람이 분다. 하루 사이에 나뭇잎은 다른 마음을 먹었다. 더 버티지 않기로 작정했다. 바람이 불면 나무에서 힘을 빼기로 했다. 나뭇잎이 낙엽이라 불리게 됐다. 낙엽 위를 걷는 할머니는 노래를 틀어놨다. 신나는 노래가 분명한데, 낙엽 위를 걷는 할머니 라디오에서는 하필 ‘가야 해, 가야 해, 나는 가야 해…’를 외치고 있다.


그 할머니는 두 번째인데, 두 번 다 같은 자리에서 보고 있다. 아마도 햇볕을 쬐고 집에 가시는 길일 것이다. 햇볕은 일부러 쬐어야 한다. 나도 그렇다. 여름날 새벽 산책과 다르게 해를 잔뜩 받으며 걷는 가을날 오전 산책은 불면증을 깨끗하게 없애줬다. 신랑은 내 안경 벗겨주는 게 일과다. 혼자 자는 날은 안경을 쓰고 잔다. 티브이도 켜고 잔다.


바람과 함께 나뭇잎은 그림자 자리에 떨어졌다. 바짝 마르지 않은 잎이라 멀리 가지 못하고 딱 그림자 자리에 머물렀다. 참새떼처럼 바삐 떨어지는 모습도 가을에나 볼 수 있으니, 콘서트 관객처럼 난 지켜봤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멀리 오르막길이 보인다. 5일 차, 난 드디어 변화를 겪었다. 첫 번째 쉬던 코스를 지나쳐갔다. 일부러 참아낸 게 아니다. 묵근한 통증이 느껴지지 않아서다. 두 번째 쉬는 코스에 다다르자 묵근함이 올라왔다. 쪼그린 채 3분을 쉬었다. 이제 몸이 원하는 데로 해주고 있다. 대신 꾸준하게만 해주자. 나도 모르게 얻게 되는 것들, 그때 즐기자.

개떼를 만났다. 사진 찍을 준비를 하자 어느새 세 마리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모두 나를 피해 논으로 각자 흩어졌다. 요 녀석들, 집 근처가 아니면 입도 뻥긋하지 않는구나. 혼쭐나게 도망가는 개떼를 보고 난 껄껄껄 웃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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