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위는 ‘휴일에 걷는 오후 산책’

만보 걷는 일상

by 게으른 산책가

어제 지리산 뱀사골에서 남원에 있는 카페로 향할 때, 둘레길 1코스를 지나갔다. 그 길이 멋져 보였던 이유는 해 질 녘이었고,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가는 건강한 20대 무리를 봐서였다. 잠깐이지만 나도 그들처럼 트레킹 복장을 갖춰 입고 해 질 녘을 걷노라면, 아름다워 보일까 상상했다.


내게 산책이 일상이 되어가고(아직도 완성형이 아니니) 난 후부터, ‘기우’ 일지 모를 걱정도 하고 있다.

‘발에 무리가 오면 어쩌지.’

겨우 만보를 걸으면서도 그것마저 일상에서 만끽하지 못한다면, 우울할 것만 같다.


아직 있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는 것, 이런 걱정이 아주 쓸데없는 것만은 아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생길 때,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잖아, 예견된 일인 마냥 담담할 수 있다. 슬픈 ‘예행연습’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이런 연습은 언제부터 시작된 지 나는 안다. 내 곁에서 떠나지 않을 거 같던 사람들이 흙으로 척척 떠날 때부터 난 예행연습을 해왔다. 자주 하면 우울병 걸리니까, 몇 초씩만 가끔 하는 걸로.


다크 초콜릿 맛 같은 쓴 맛일 수도 있다.


20여 분을 걸으며 갈등을 했다. ‘오르막길을 빼먹을까?’ 땡땡이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몸이 좀 처진 탓이었다. 하지만 열흘 남짓의 ‘꾸준’씨는 효과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그 길을 걷고 있었으니.



단풍나무에 해가 걸릴 때쯤 오르막길을 향하고 있었다. 내 의식은 이제 무의식이 되어가는지, 알아서 매번 쉬는 그 자리에서 한 번 쉬고는 거뜬히 올라갔다.


4시 20분쯤, 서쪽을 바라봤다.



산이 높아서 해는 반만 보였다. 밝았던 때에 나선 발걸음은 그림자가 사라진 때에 집을 향했다. 한 시간 이십 분을 걷지만, 반나절을 길에서 보낸 듯한 착각을 ‘느끼며’ 풍성함에 뿌듯하다. 시골 산책의 묘미가 하나 더 있다. 무엇을 태우는지 모르겠지만, 가을만 되면 이 냄새가 난다. 가을에만 맡는 냄새라 단풍보다 더 진하게 가을을 느끼게 한다. 에스프레소처럼 말이다.


새벽에 걷는 여름 산책 1위

오전에 걷는 가을 산책 2위

휴일에 걷는 오후 산책 3위


내가 좋아하는 산책에게 이름을 지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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