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겨울 사이

개떼와 산책길이 겹치더라도 걷는다

by 게으른 산책가

무려 나흘 동안 목욕을 한 효과는 확연히 드러났다. 때 구정물이 땅바닥으로 모두 떨구어졌다. 내 눈은 몽골인이 된 듯, 저 멀리 모든 게 보일 것만 같다.


물웅덩이에 단풍잎이 떨어졌다. 그걸 보지 않았다면 맡고 있는 냄새에 대한 생각이 옅어졌을 텐데. 더운물에 떨어지는 커피처럼, 단풍도 고인 빗물에서 향을 내고 있는 건 아닐까,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9시에 나서는 산책은 눈부시다. 하지만 내가 걷는 코스가 6킬로 정도이고, 어느 구간은 바람이 차서 귀까지 눌러지는 모자를 써야 했다. 겨울바람에 비하면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11월에 부는 바람 치고는 센 바람이라, 겨울 냄새가 났다. 겨울이라도 칭칭 감고 나선다면 왠지 의연하게 걸을 수 있을 자신감도 생겼다.


학이다. 2.1배로 확대해도 저리 작아 보인다. 내 눈에는 엄청 커 보이는 학이 비둘기만하게 보였다. 내가 겪으면 큰일이 남의 눈엔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과 비슷한? 지금 내게 진지한 것들을 카메라로 찍어보고 싶다. 얼마나 한 크기 일까. 4배로 확대해도 콩알만 한 일일까?

가장 뒤에 있는 산 정상에 눈이 하얗다. 눈을 보니 댐에서 불어오는 바람 온도가 달리 느껴졌다. 아주 차갑다.


어제 이 길을 걸을 때 어떤 견주를 만났다. ‘견주’와 ‘견’ 사이로 규정하기에는 애매함이 있었다. 개가 나를 향해 달려오니, 견주는 그 개를 향해 외쳤다.

“앉아, 앉아!”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내게 달려오는 개를 보니 견주가 짠했다.

‘사춘기 개를 키우고 있구나.’

달리고 있는 개에게 ‘앉아!’라는 명령은 아주 어색했다. ‘멈춰!’가 그나마 나았을 텐데. 아마도 시골에서 그것도 댐 길을 걸을 때, 사람을 만난 적이 처음일 거란 추측을 했다. 개는 내게 다가와 냄새를 맡았다. 충분히 맡을 때까지 기다려줬다. 그리고 인사도 했지.

“잘 가.”


적개심을 품은 개와 호기심을 품은 개는 나도 알아보니까 겁나지 않았다. 적개심을 품은 개떼, 오늘도 만났다. 그들은 왜 떼거지로 다니는 건지.


나뭇가지를 준비하길 잘했다. 리어카를 끌고 오는 동네 할머니께서 그 개들에 대해 통달한 듯 말씀하셨다.

“저것들이 간을 본다니까. 꼭 막대기를 들고 다녀야 돼.”

그럼에도 동네 주민들은 견주에게 불만을 토로하지 않고 알아서 대처를 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지나치다가 다시 돌아가서 사진을 찍었다. 아스팔트 틈에서 자라난 꽃은 일제히 남쪽을 향하고 있었다. 여러 꽃송이는 은하수처럼 딱 붙은 얼굴로 움츠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너를 피해서 걸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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