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마중비가 와도.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시는 것은 커피를 얻는 즐거움 말고도 과정이 설레는 거구나. 네스프레소 브랜드로 나오는 다양한 캡슐 중에서 고르는 재미도 있고 추출된 커피물이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 가까운 거리에서 코로 향을 마시는 것, 모두 만족감을 준다. 머그잔에서 김이 사라지기 전에 키보드를 가져오고 거실 등 대신 주황빛을 내는 조명을 켰으며 블루투스 스피커를 조명 곁으로 옮겼다. 드디어 커피를 마시며 글을 써본다.
비가 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간밤에 잠을 설쳤다. 머리가 맑지 못했다. 내 몸은 그걸 인지한 순간, 바지를 갈아입고 있었다. 비도 와서 공기는 더 맑을 것이다.
날씨는 춥지 않았다. 오히려 외투가 과했다. 내 예상대로 빗속을 걷는 동안 손빨래한 소매 끝처럼 머릿속이 깨끗해졌다.
이때 우산 위에서는 좁쌀 소리 정도만 났다. 가을비가 그렇지 뭐.
처마 끝에서 아스팔트로 떨어지는 비는 점점 요란했다. 내 운동화에도 빗물이 스미기 시작했다. 발을 뗐다 붙였다 하는 게 마중물을 넣은 후, 펌프질 같았다. 발은 젖어들었다. 맑아진 내 머릿속에는 오늘 출근할 때 뭐 신고 나가야 할지 고민했다. 7-8년 된 캐주얼 가죽 구두 말고 떠오르는 게 없다.
낙엽은 물길을 따라 떠내려가고 있었고 나는 걸음수를 줄여야 했다. 우산 위에서는 이제 자갈 떨어지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이제 하루 입은 바지는 묵직한 밑단이 되었다. 일자바지가 나팔바지 핏이 나니 뭐.
“산책 다녀와?”
평소에 눈인사만 하던 동네 어른들은 말끝에 물음표를 대롱대롱 달고 말을 거셨다. 옴팡 젖은 건 바지와 운동화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내 머리칼도 젖었다. 우산 중심에서 물이 한 방울씩 뚝뚝 떨어질 게 뭐람. 어른들이 보면 집에서 한바탕 싸우고 열 식히는 마누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내 표정은 (운동화 빨면 된다고 생각하고 나니) 평화로왔으니 오해할 일은 없다.
내일 비가 오더라도 오늘처럼 순한 공기 냄새가 난다면 집을 나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