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옆, 메타세쿼이아

바람 불어도 산책했더니 보이는 것

by 게으른 산책가

우리 집은 냇가를 옆에 두고 있다. 그리고 심다 만 메타세쿼이아가 몇 그루 있다. 추측해보면, 쑥쑥 자라는 나무가 만들 음지 때문일 것이다. 딱 논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나무 심기는 멈춰 있으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나무는 사계만큼만 색을 표현하지 않았다.

3월, 나무에 물이 차오르면 태아처럼 오므린 잎이 보인다.

4월, 겨우 펼친 잎을 만진다면 잎은 데일 것만 같은 여린 연두 잎이 살랑거린다.

5월, 동쪽에서 따뜻한 아침 볕이 쏟아질 때, 열심히 젖을 빠는 아기처럼 볕을 먹으며 야무진 연두 잎이 된다.

6월, 햇살이 따가운 오후에 피할 수 있는 그늘도 만들 줄 아는 풍성하고 짙은 녹음을 갖는다.

7월, 새벽 산책길에 주머니에 있는 휴대전화를 꺼내게 만든다. 뽀얀 안개랑 그렇게 잘 어울린다.

8월, 여름밤에 나서는 산책길, 나무 아래에는 사슴벌레가 있다. 사슴벌레의 여름 별장이 되기도 한다. 9월, 아직 푸르지만 배추 겉잎처럼 힘을 잃은 초록은 내 마음에 가을을 들여놓는다.

10월, 노란빛으로 한가을을 알린다.


11월 지금, 나무는 녹슨 붉은 함석 조각 빛을 띠고 있다. 사나운 바람이 분다. 함석 조각은 소리 없이 힘없이 바닥에 널린다.

바람이 분다. 박하맛이다. 가슴에서 화한 맛이 났다. 박하 바람을 맞으며 어두운 아침 하늘을 보니 눈이 올 것만 같아.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무튼,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