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매우’ 열심히 하는 어른 사람
수업의 끝과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사라진 지 오래다. 수업의 질을 위해서 선생님의 재량으로 더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한다. 1시 40분, 아이들이 올 시간이다. 목소리 톤을 조금 더 명랑하게 높이고, 옷매무새도 살펴본다.
후관에 있는 4학년들은 전관 2층의 돌봄실을 향하여 뛰어 온다. 헐떡이는 소리와 함께 외치는 말이 있다.
“놀아주세요, 헉 헉.”
연이어 다른 아이가 뛰어 온다. 같이 헐떡이지만 표정이 다르다. 얼굴에서 백기가 펄럭인다.
“그다음 저랑 놀아주세요, 헉 헉.”
첫 번째로 온 민이는 근래에 빠진 보드게임이 있다. ‘인생게임’인데, 선택의 기로가 여러 번 있으며 다양한 ‘액션 카드’의 미션은 나의 점수에 기복을 주어 현재에 비관할 수도 낙관할 수도 없다. 돌봄실에 온 지 얼마 안 된 보드게임이라 나는 완전히 알지 못한다. 설명서를 자신의 다리 곁에 둔 채 시작하는 민이는 나와 보드 게임하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들보다는 규칙을 잘 알기 때문에 시비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그건 내가 규정하고 싶은 이유이고, 아이의 속내는 그게 아니다. 선생님은 정말 열심히 하고 아이들을 봐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선생님이 꼭 꼴등을 한다는 운이 지지리도 없다는 점이다. 선생님은 게임 파트너로서 굉장히 매력이 넘치는 것이다. 윷놀이를 해도 ‘모’ 나 ‘윷’은 지지리도 안 나오며, 설령 나와서 말이 앞장서면, 이내 다음 사람에게 잡히고 만다. 열 살, 열한 살은 다 안다. 선생님이 이기기 위해 얼마나 안달이 났는지. 그럼에도 자신을 이기지 못하니 스스로가 위대해짐을 느끼겠지.
아이들은 나를 어른으로 보고 있다. 어른은 강한 존재로, 어떤 위기에도 상처 받지 않다고 여긴다. 보드게임을 하며, 가끔 앞서는 나를 보면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편을 먹는다. 그렇다면 나는 오기가 생긴다. ‘그럼에도 너희를 이기고 말리라. 편법의 종말을 알려주마.’ 아이들이 느꼈을지 모르겠지만, 말수도 적어지고 진지해진다. 하지만 ‘다빈치 코드’를 할 때에 편을 먹는다면 속상하다. 아니 속이 화끈거린다. 아니 열 받는다.
“애들아, 다빈치 코드에서 편 먹으면 곤란하지.”
상대의 숫자를 알아맞히는 추리게임이다. 그런데 편을 먹는다면 자신이 가지지 않은 숫자를 편먹은 아이에게 알려주며 나를 공격한다. 이 게임에서 편먹는 건 그냥 나눌 수 없다. 나는 선언을 했다.
“나 안 해. 너희들 편먹으면 나 안 할 거야.”
“아, 알았어요. 각자 해요.”
그러면서 나만 공격하는구나. 또 꼴등이다. 희한하게 내가 꼴등을 하면 다른 두 아이는 친해진다. 자신들이 어른을 물리쳤다는 통쾌함일까? 마치 독립군이 일본 경찰을 괴롭힌 뒤, ‘우리가 해냈소.’ 그런 표정으로 웃음을 쏟아냈다.
그래, 내가 나쁜 역할은 다 할 테니, 부디 싸우지 말아 다오. 하지만 다빈치 코드에서 편은 먹지 말자. 너희는 총 칼 다 있고, 나는 맨 몸으로 싸우라고? 나 진짜 열 받는다니깐.
오늘은 수요일, 나는 몇 가지의 보드게임을 하게 될지 짐작하기 힘들다. 민이가 맨 먼저 돌봄실에 온다면, 인생게임으로 인생의 쓴 맛부터 봐야겠지.
작년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