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한 번에 보내주세요.
“선생님, 오늘도 좀 시끄러울 거예요.”
H는 귀여운 오동통한 볼을 실룩거린다. 출근하자마자 불편한 예고편을 전하는 H는 어제도 몇몇 아이들과 좁은 돌봄실에서 땀 흘리도록 뛰어다녔다. 아이들도 몇 명 안 되니, 그냥 두었다. 조그만 체구지만, 발바닥에는 고무판을 붙인 듯했다. 차라리 나도 같이 뛰는 게 낫겠다는 상상도 했다. 다음에도 뛴 다면 말려야지 했는데 또 뛴다고? 예고편을 마치고 뒤도는 아이에게 나는 외친다.
“오늘은 뛰면 안 돼.”
“선생님, 앞으로 수요일 6,7교시에 아이들 돌봄실에 못 갈 거예요. 외부 수업이 있거든요. 아이들 국악실로 보내주세요.”
방과 후 담당 선생님이 전해 준 소식은 뇌가 반기는 일이었는지, 입 꼬리가 올라갔다. 나의 의지와 다르게 속마음이 그대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네, 선생님. 고맙습니다.”
‘이 정도면 서프라이즈 선물이네. 책을 싸오길 잘했어.’
책을 읽겠다는 생각부터 떠올랐는데, 손은 휴대폰을 만지고 있다. 시간은 아직도 넉넉하다.
3학년 아이들은 외부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못 들었나 보다. H와 더불어 아이들은, 아니 모두 다 풍선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너희들 좋아하는 만들기 수업이래. 애들아 늦었어. 어서 가. 앞으로 매주 수요일은 국악실로 가는 거야.”
풍선 빠지는 소리는 힘이 들어간 하소연으로 바뀌었다. 점심시간 동안 이들의 머릿속에는 여러 일정이 있었다. 하소연은 아이들의 입에서 일제히 튀어나와 비빔밥이 되었다. 비빔밥은 거의 비슷한 재료의 혼합이었다. ‘비빔밥’ 몇 그릇을 더 만들어내고, 국악실로 향한다.
드디어 나의 시간이다. 책을 좀 읽을까? 몇 줄 읽자마자, 선생님과 공부를 하느라 늦게 도착한 아이가 온다. 국악실로 안내한다. 그 뒤로도 몇 명이 띄엄띄엄 왔다. 그렇게 6교시가 지났고, 일찍 갔던 아이들은 만들기를 완성하고 돌아왔다. 책은 몇 줄 읽기에서 멈췄다. 금세 돌봄실은 아이들로 채워졌고, 불편한 예고편을 했던 H는 몇몇 아이들과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보드게임을 하자고 나에게 달려드는 두어 명의 아이들과 다른 쪽에서는 대화를 하며, 지점토를 꺼내 달라고 하는 아이들... 비빔밥에 들어간 재료는 고추장에 물러지지 않았다. 다시 생기를 얻고 말았다.
“애들아, 뛰지 마. 클레이 흰색은 아껴 쓰자. 지점토 줄 테니, 둘이 같이 쓰고.”
민과 우는 나와 보드게임을 했다. 이번엔 테트리스이다. 자신의 블록을 연결해야 하며 반대로 상대의 블록 연결을 끊어야 한다. 민은 나와 여러 차례 해봤고, 우는 처음이다. 민을 골리기 좋아하는 원이가 다가왔다.
“우야, 모양을 돌려봐. 아니 아래쪽으로.”
민이는 1등을 하고 있었고, 원의 등장으로 위기에 처했다. 민이는 씩씩대기 시작했다. 씩씩대는 소리만 내는 줄 알았는데, 흘깃 보니 검은 눈동자보다 흰 눈동자가 많아졌다. 점점 원이가 하려던 계획(민이 화나게 하는 것)에 말리고 있는 것이다. 민이는 나에게 긴급한 허락을 구한다.
“선생님 욕 해도 돼요? 저 욕하고 싶어요.”
허락해주고 어떤 욕을 할지 듣고 싶었다. 순진한 저 입에서 어떤 욕이 나올까. 나의 욕망은 잠시 눌러주었다.
“당연히 욕하면 안 되지. 원아 이제 그만 끼어들자.”
그 뒤로도 원은 계속 훈수를 두었다. 결국 민이의 검은 눈동자는 더 작아지고 대신 눈물을 쏟고 말았다. 게임도 거의 끝났다. 점수를 세어보니 민이가 일등이다. 우는 원의 훈수 덕에 이등, 난 꼴등을 했다. 그리고 우의 한 마디가 압권이다. 아주 젠틀하며 높낮이 없는 목소리였다.
“아, 결국 민이 형이 이겼네요. 그런데 형의 멘탈은...”
말줄임표는 내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너덜너덜해졌어요.’
그럼에도 나는 안다. 다음날이면 어깨동무하며 나타날 것을. 고요하지 못한 수요일의 돌봄 시간은 나도 등장하는 시트콤 드라마이다. 눈물을 쏟는 장면도, 소리를 지르는 것도, 뛰어다니는 것도 시트콤이다. 그 속에서 피디는 나였노라.
2020. 11. 19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