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수돗물, 그걸로 충분해
그네 옆에 모래 무더기가 있다. 모래 놀이터도 어색하고 씨름장도 어색하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 어렸을 때, 이곳에서 씨름을 겨룬 것 봤으니, 씨름장이다. 그리고 코로나 이전에 면 체육대회가 열리면 여기에서 씨름판이 벌어졌다.
근처에 수돗가가 있다. 모래 놀이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다들 이집트의 도시 설계자가 되어 흙을 파내고 길을 낸다. 혹은 웅덩이를 파내어 물이 고일 때까지 들이붓는다. 처음엔 해봤자 소용없다, 생각했지만 지켜본 결과 아이들의 집요한 물 붓기로 결국 물이 고이고 만다. 엄마들이 그걸 봤다면 할 말은 다 똑같을 것이다. 얼마나 열심을 다하는지 봤다면 말이다.
물이 찰방거리면 흙을 더 섞는다. 슬라임처럼 촉감을 즐기는데 흙탕물이 튈까 봐 주의를 줘야만 했다. 흙만 가지고도 몇십 분을 노는 아이들, 정말 집중력이 최고다. 여기에서 조금 더 아는 게 많은 내가 놀이에 대한 설정을 해주면 아이들은 노는 상태에서 일시 정지된 상태로 내 이야기를 듣는다. 노골적으로 듣지 않고, 안 듣는 척하며 듣는 것이다. 하지만 티 난다. 동작을 멈추고 있으니깐.
땅을 더 잘 파기 위해 도구를 찾아 나선다. 나뭇가지 중에서 튼튼한 걸 찾아야 흙을 파는 사장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친구들이 자신에게 다가와 “나도 이 가게에서 같이 일할래.” 구직 희망을 밝힐 테니까.
월요일부터 땅을 파던 윤이는 3일 차인 수요일이 되자 꽤 깊어진 구덩이를 보고 흡족해한다. 돌을 가져와 손에서 힘을 빼니 그것은 반듯하게 자리에 떨어진다.
“아이고 윤아, 옷에 흙 다 묻잖아.”
“괜찮아요. 털면 돼요. 이건 제 베개예요.”
이 아이들을 보면 난 아이에서 한참을 달려왔다는 걸 깨닫는다. 소매에 윤이 나도록 코 닦던 ‘어린 나’는 이젠 코딱지를 팠으면 얼른 흔적을 지우는 ‘어른’이 된 것이다. 짚불 속에서 먼지 들이마시며 놀던 나는, 먼지만 나면 코부터 가린다.
털어내면 되는 것을 뭐가 그리도 안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