져주는 것을 모르는 돌봄 교사 이야기
“선생님, 맞짱 떠요!”
5학년 K는 맞짱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을 제외한 단 둘의 대결이다.
“좋아, 나 오른손으로 하게 해 줘.”
난 오른손잡이이지만 대개는 왼손으로 아이들을 맞섰다. 45년째 공기놀이만 한 것도 아니지만, 세월을 경력으로 인정해주는 아이들 탓이다. 그나마 고학년이라면 각종 ‘핸디캡’을 원하지 않았다. 공기놀이는 몇 년의 내공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몇 달만 집중적으로 연습을 한다면 충분한 놀이다.
시골 학교는 방학 중 돌봄 교실에 특기적성 수업이 없다. 오자마자 공기놀이를 하는 게 몸을 푸는 일인 양 아이들은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부쩍 실력이 늘어난 아이들이 많아지자, 공기알을 빌려 집으로 가져가는 아이들도 늘었다. 연습한 것을 뽐내고 싶은 아이들은 선생님과 겨루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K는 자상하지도 않았고 마른 몸도 아니었다. 그저 둘만의 맞짱이 끝나길 바랄 뿐. 이 녀석 내가 어떤 마음으로 맞짱에 대응하는지는 알까?
K는 꺾기 부분에서 더블로 하는 것에 심혈을 기울였다. 역시 남자는 ‘한방’이던가? 다섯 개를 더블로 꺾으면 10살을 얻으니 한 방을 노릴 만하다. 나도 더블로 한방을 노렸다. 하지만 연습할 때와 달리 실전에서는 공기알이 새고 말았다. 아, 내가 긴장하고 있었구나. K도 며칠 동안 나와 겨루며 내가 실전에서는 긴장한다는 것을 깨닫고 말았다.
K와 맞짱 뜨기 전에 다른 아이들과 공기를 하면서 가볍게 손을 풀었건만 내 승부욕은 손바닥에 전류가 흐르도록 만들었다. 덜렁대는 마음을 부여잡자. 이 녀석을 꼭 이기고 싶었다. 30살까지 과연 누가 먼저 갈 것인가. 오, 처음부터 잘 풀린다. 한 번에 10살이나 먹었다. K는 더블이 원활하게 되지 않았다. 급기야 1개가 손등에 올라와도 일부러 흘러내리지 않고 받아냈다. 가소롭게 여기던 하찮은 1살도 버리지 않은 걸 보니 마음이 급해진 거다. 난 순식간에 20살을 먹고 말았다.
“열두 살을 이기면 좋아요? 좀 봐줘요.”
“난 절대 안 봐줘. 저번에 슬이에게 져서 얼마나 우울했는데. 너로 내 기분을 만회할 거야.”
결국 내가 이겼고, 한일전 축구를 볼 때 승리한 우리나라 선수처럼 소리를 질렀다.
“와아아아, 내가 이겼다.”
“에잇, 한 번 더 떠요.”
“좋아.”
하지만 그 뒤로는 더 빠르게 내가 또 이겼다.
“야, 넌 정말 천사야. 나의 기분을 이렇게 올려주다니. 고맙다, K야.”
“내일 한 판 더 떠요.”
“좋아.”
이 녀석 오늘 집에 가서 엄청 연습하는 건 아니겠지? 난 내일은 웃지도 않고 응대할 거다.
(욕을 무지 잘하지만 유머러스해서 혼내다가도 같이 웃는 사이다. 하도 욕을 해서 18(시팔) 말고 19로 말하라고 했다. “그럼 어색하잖아요.”라고 하길래 “어색하면 아예 하지 말던가.”라고 했다. 그 욕의 시발(??)점은 어디인지 그 아이의 욕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던
모든 사람과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던
5학년 꼬마는
......
키 작은 꼬마는 두 눈을 감고 품에 안긴 채
용서와 사랑을 배우고
.....
(악동 뮤지션, ‘맞짱’ 중)
K가 철이 들 때쯤, ‘19’라는 숫자를 보면 떠올릴지도 모른다. ‘시팔’을 남발하던 어린 자신을 미워하지 않게 돌려 말해주던 나를, 절대 봐주지 않음으로 더 열심히 경기에 임하던 열두 살 어느 돌봄 교실을, 겨울 방학 돌봄 교실의 데워진 온돌의 온도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