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동갑 친구들

뱀띠들에 대하여

by 게으른 산책가

올해 아홉 살은 특별하다. 그들은 나와 띠동갑이다. 무려 36살 차이 나는 친구들. 뱀띠를 옹호하는 편인데, 이유는 내가 만난 뱀띠들은 온순한 편이었다. 중학교 다닐 때도 우리 학년은 달랐다.


위에는 용띠 선배 아래로는 말띠 후배인데 세 학년의 개성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날이 있다. 바로 소풍날이다. 오전 내내 걸어서 너른 냇가로 자리를 잡았다. 한 학년에 두 반, 총 여섯 반이다. 그리고 한 반에는 무려 50명 정도였으니 300명이 조금 덜 되는 인원이다. 그럼에도 3할 정도는 빈 느낌, 즉 우리 학년은 참 얌전했다. 다들 왁자지껄한 소풍날에 우리 학년은 서로 빼느라 조용하다(물론 활발한 아이들도 있으나 다수 분위기에 날개를 못 폈다고나 할까).


큰딸도 뱀띠다. 큰딸이니 만큼 학교 참관수업은 되도록 빠지지 않았다. 큰딸이란 뭐든 처음으로 엄마놀이를 할 수 있게 해 주니까.

“이 반은 워낙 조용해서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 쉬는 시간에 몰래 복도에서 바라볼 정도예요. 어쩌다가 그것도 들키면 후다닥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니까요.”

담임 선생님의 말씀이다. 겨우 여섯 명 밖에 안 되는 아이들이지만, 다른 학년도 학생수가 적다고 해서 조용하지는 않다. 토의할 때도 귓속말로 하는 애들이었다. 참관 수업을 갔지만 내가 듣고 온 것은 고요 속에서 퍼지는 선생님 목소리뿐(선생님은 질문을 엄마들에게도 했다. 얼마나 놀랐던지 참관수업은 이제 끝이구나 싶었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반은 아홉 살 뱀띠다. 이건 이 글을 쓰기 전에 깨달았다. 사실 이 글을 쓸 때 나는 뱀띠에 대한 글을 쓰려하지 않았다. 어제 아이들이 그려준 내 그림에 대해 말하려 했다. 7명 정원인 내 뱀띠 친구들, 이 친구들은 정말 어렵다. 온갖 벌레를 잡아오는 것도 그렇고, 작은 청개구리부터 뱃살이 두둑한 개구리까지 잡아서손에 얹고 다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나도 소실적엔 메뚜기를 잡긴 했다만 애완동물처럼 데리고 다니진 않았다. 어제는 끔찍한 이야기도 들었다. 운동장에서 꽃뱀이 나왔다고 한다. 학교 관리해주는 분이 잡아서 머리를 잡는 동안 아이들은 뱀을 쓰다듬었단다. 피부가 부드러웠다며 뱀 피부에 대해 칭찬도 마구 쏟아냈다. 쏟아낸 칭찬만큼 난 몸서리를 쳤다.


갑자기 한 아이가 나를 그리기 시작했다. 내게 꾸중을 듣던 그 녀석은 ‘복수심’에 나를 그린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술학원에 다닌다는 아이가 나를 그렇게 표현했을까. 내 띠동갑 친구들은 한 명이 새로운 것을 하면 다 따라 한다. 애들은 이 날 나를 실컷 바라봐줬다. 그리고 한 아이가 ‘초현실주의’ 화가처럼 그림을 완성했다. 내가 쓰지 말라는 언어와 함께….


일곱 명 띠동갑 친구들은 언제나 내 기운을 뽑아간다. 티슈각에서 티슈 뽑듯 ‘슝슝’.


한 친구는 그림 처방을 해줬다. 아주 마음에 든다.

금요일의 지구는 다른 중력이 존재한다. 눈꺼풀이 버티지 못하는 중력으로 ‘나 혼자 산다’는 또 못 봤다.


36살 차이 나는 띠동갑 친구들아, 다음 주 목요일에 만날 때는 내게 익숙한 ‘뱀띠’가 되어주렴. 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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