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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Feb 01. 2023

한겨레 오피니언에 실린 우리의 강릉살이

쫓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 그래서 우리는 강릉이다 (23.1.30)






쫓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

그래서 우리는 지금 강릉이다.

한겨레 오피니언 <왜냐면> 기고글 (2023.1.30)





늘 바지런한 삶을 살아왔다. 무언가를 하지 않는 시간은 없었다.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가 서른일곱 살인 지금까지 학교에 있다. 그냥 학생이었다가 연구하는 대학원생이었다가 엄마가 되었고, 그 사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사이’라는 세 글자로 표현했지만 어린 아들 둘을 데리고 무사히 졸업하기까지의 그 시간은 생각보다 처절했다. 그 뒤로 나는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어느새 두 아들도 초등생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자랐다. 내가 사회인으로 자라나는 시기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성장하고 있었다. 당연히 아이들의 성장이 중요했지만 나는 이상하게 나를 놓을 수 없었다. 아이들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나도 중요하다고, 힘겨루기를 했다. 그래서 아마 더 지쳤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노동을 해야 한다는 말을 되뇌며, 내 노동을 사회 안에서 확인받아야만, 그래야만 내 어떤 존재적 가치가 분명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을 늘려갔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만들었다. 가만히 있으면 소멸할 것 같은 이상한 불안감에 휩싸였다. 자꾸, 자꾸, 무언가를 했다.


이런 나에게 지난여름은 여러모로 아주 새로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쉬기로 했다. 쉼의 장소는 강릉이었다. 모든 것을 멈췄다. 9월이 되면 우리는 돌아올 거라고 여기저기 인사를 했다. 그리고 강릉에서 무더운 여름을 찐득하게 붙어 지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떠남을 두고 왜 하필 강릉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다. 코로나19로 해외는 고려할 수 없었다. 그다음으로 사람들이 많이 지내는 곳은 제주도였는데 우리는 제주도가 아닌 강릉을 선택했다. 왜 강릉인지 묻는 사람이 많았는데 단 한 번도 자세하게 설명한 적이 없다. 그냥, 강릉이 좋다는 모호한 말로 때웠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왜 강릉인지. 여행으로 많이 다녔던 곳이라 낯설지 않았다는 것, 케이티엑스(KTX)가 있어 남편이 오가기 수월하다는 것, 차가 있으면 대부분 수월하게 다닐 수 있는 도시라는 것, 그리고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자연이 있다는 것, 이 정도였다. 늘 그렇듯 어떤 효율성과 아이의 취향을 중심으로 선택한 지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40일 동안 강릉에서 지내면서 나는 왜 강릉인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일단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큰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면 바다가 나오는 강릉이 좋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않았다가 큰 위로를 받은 것이 있는데 바로 바다 옆으로 이어지는 솔밭길이다. 그 길은 그늘도 많고 나무도 크고 길도 폭신하다. 그 안을 따라 걷기만 해도 마음이 놓인다. 눈과 귀로 바다가 넘치게 느껴지는데 내 몸은 소나무 사이라니…. 우리를 지탱해주는, 어떤 큰 울타리 같았다. 무엇을 해도 괜찮다고 자연이 우리를 달래주는 것 같았다. 작은 의자를 두고 하루종일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 숲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언제고 바다로 뛰어나가 내 눈앞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는 내내 나는 역시 마음이 놓였다. 정말로 이상하게, 내가 살던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마음이었다. 안도감. 무언가에 짓눌리거나 쫓기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로 내가 가득 채워졌다. 또 조금만 나가면 많은 산과 숲이 우리를 또 위로했다. 오늘은 저기, 내일은 여기. 조금씩 다른 바다를 따라, 숲을 따라 살아낸 그 시간들은 왜 하필 강릉이냐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이번 겨울에도 강릉에 왔다. 이번에도 사람들이 물었다. 겨울에는 강릉에서 뭐 하고 지내? 역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도 몰랐다. 마음이 놓이는 그 시간들을 잊지 못해 다시 강릉을 간다는 것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다. 강릉에서 얼마간의 시간을 살아낸 지금은 말할 수 있을까, 나에게 묻는다. 매일 곁에 바다와 소나무를 두고 사는 날들. 아이들은 텅 빈 바다 그네를 향해 달려가고 “여기서는 마음껏 소리 질러도 되지?”하며 신나게 웃는다. 차가운 바람에 얼굴이 발개지고 신발에는 매일 서걱한 모래가 가득 들어찬다. 소나무가 된 양 소나무 옆에 우두커니 섰다가 파도처럼 달리기를 반복한다. 매일 문제집 몇 장을 풀고 있지만 그것으로 얻을 수 없는 힘을, 배울 수 없는 답을 얻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각자 삶의 여러 페이지를 채우거나 비우고 있다.


우리는 날마다 다른 바다에 안긴다. 여전히 다 괜찮다고, 차가운 겨울에게 따뜻한 힘을 얻는다. 마음을 놓는다. 그것이면 되었다. 우리는 지금 강릉이다.






*원문 링크는 아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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