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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Jan 16. 2023

올 겨울도 강릉에서 산다



1월 1일부터 강릉 겨울살이를 시작했다. 지난여름처럼 끝이 약속된 살이, 이번엔 두 달 동안 머문다.


어제로 강릉 겨울살이 보름차가 되었다. 겨울살이를 준비하며 겨울 강릉에서는 무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글쎄. 사실 나도 잘 몰랐다. 우리가 세워둔 계획은 스키 시즌권과 아이들이 여름에 너무 좋아했던 동양화 수업이 전부였다. 빙상장이나 기타 수업처럼 이런저런 일정은 곁다리로 붙은 것이지 우리의 목적은 아니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내게 목적은 강릉 그 하나였다. 당연스레 쫓아오는 겨울에 강릉에서는 뭐 하냐는 질문들에 어물쩍 넘어갔다. 무엇을 하지 않으려고 선택한 강릉행이다. 꼭 무엇을 해야 하나. 강릉은 오롯이 우리끼리 우리의 시간을 보내기 위한 공간으로 충분하다. 출발 전에는 그 질문들이 막연했다. 하지만 겨울 강릉 보름이 지난 지금은 여유가 생겼다. 무엇을 하는지 중요한 이들에겐 무엇을 하는지 친절하게 읊어준다. 그러나 우리는 그보다 많은 좋은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웃기게도 나는 강릉에서 틈틈이 여름 발리 한달살이 예약을 하고 있다. 발리행은 12월부터 예약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문득, 강릉살이를 이렇게 일단락하고 여름에 발리를 가면 우리가 다시 강릉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요 며칠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발리는 여행이고 강릉은 강릉이지. 아무 연고도 없는 이곳이 이토록 좋다면 나에게 강릉은 또 하나의 새로운 의미로 자리 잡겠구나 혼자 생각했다. 확신에 가까웠다.



어제 일주일 만에 만난 남편과 같이 눈 오는 겨울 파도를 바라보고 있는데 남편이 먼저 말을 연다. 강릉은 그냥 애들이 커도, 시간이 가도 애들한테나 우리한테나 계속 좋을 것 같아. 나는 눈이 커졌다. 그치.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남편이 오로지 내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내 계획을 따라주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무던하고 마음이 강한 내 남편은 강릉이 아니어도 어디서나 자신을 달랠 줄 안다. 근데 나를 만나, 나에게 공감하며 나의 선택을 늘 따라주느라 고생이 많다. 알고 있다.


겨울 강릉 보름차가 되어 할 수 있는 이야기. 여전히 이곳은 나에게 좋고 나는 여기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로를 여전히 얻고 있다는 것. 그저 나는 내 시간이 이렇게 채워지는 것에 감사하며 살겠다는 마음을 되려 얻는다. 투명하지 않은 사람과 일을 멀리하며, 투명한 마음을 채워가는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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