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누구보다 미니멀리즘과 어울리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쇼핑을 좋아했어서 쇼핑이라면 일가견이 있었다. 집요한 구석까지 있어서 꼭 갖고 싶은 것은 갖고야 말았다. 쇼핑을 하다 하다 학교 일을 하며 옷가게까지 운영했으니 쇼핑의 끝은 장사라는 우스갯소리를 스스로 만들어하기도 했다. 이 년 동안 도매시장을 돌며 아주 원 없이 옷을 사들였다.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던 사장 노릇을 했던 그때. 뭘 해도 난리를 피웠을 해라 그러려니 하지만 아무튼 나는 굉장했다. 업종변경 없이 가게를 넘기고 마무리를 했으니 그 또한 복이었다.
이런 내게 미니멀리즘이란 당최 댈 수도 없는 말이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지난여름을 강릉에서 보내며 본의 아니게 그런 삶을 살았다. 옷 몇 벌과 쪼리 두 개 그리고 가방 하나로 버틴 삶. 나는 흥미가 떨어진 옷가지나 가방, 신발을 중고거래로 자주 파는데도 늘 옷장이 꽉 차있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최소한의 옷을 돌려 입고 늘 갖고 싶은 게 많은 내가 특별한 소비 없이 그 시간들을 살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이게 가능하구나 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고 이런 삶도 괜찮구나 라는 것도 깨달았다. 미니멈보다 맥시멈에 가까웠던 내게 그 시간들은 여러모로 좋았다.
게다가 강릉에서 임대한 집은 지금 우리 집의 절반 크기여서 짐을 늘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 청소기를 몇 번씩 돌리고 짐을 계속 정리하고 치웠다. 작은 집이 깔끔하지 않으면 얼마나 괴로운지, 열심히 치우며 지냈다. 그러고 본집에 오니 웬걸 이 넓은 집이 더 부산스럽고 난잡해 보여서 몇 날에 걸쳐 집을 치웠다. 그때부터 나는 아무리 피곤해도 열심히 치운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은 식탁과 단정한 거실을 보는 게 얼마나 편안하던지, 이전에 매일 사들이고 매일 일을 핑계로 짐을 쌓아두던 때는 미처 몰랐던 감정이다.
겨울 강릉살이를 준비하며 가져갈 짐을 가늠한다. 여름보다는 옷도 두껍고 아이들 신발도 각자 최소 두 켤레 이상이 필요해 보인다. 여름에는 크록스 하나로 지냈는데 그보다는 무언가가 더 필요하겠다. 나부터도 외투를 두께별로 챙기고 싶고 신발도 그렇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어차피 가서 지내는 동안 그것이 얼마나 쓸모없는지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한다.
몇 날의 삶으로 내가 완전히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그러고 있는 중이다. 도시를 바꿔 사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도시 바꿈을 핑계로 사는 내가 얼마나 간사한가 생각한 적도 물론 많다. 그런데 확실히 아니다. 도시를 바꿔 사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특별하다. 이 시공간에 철저히 속박된 내게는 더더욱 그렇다. 계속 그랬으면 좋겠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저 내가 잘 탈출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