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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Nov 18. 2022

최소한의 짐 : 맥시멈 탈출기



나는  누구보다 미니멀리즘과 어울리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쇼핑을 좋아했어서 쇼핑이라면 일가견이 있었다. 집요한 구석까지 있어서  갖고 싶은 것은 갖고야 말았다. 쇼핑을 하다 하다 학교 일을 하며 옷가게까지 운영했으니 쇼핑의 끝은 장사라는 우스갯소리를 스스로 만들어하기도 했다.   동안 도매시장을 돌며 아주 원 없이 옷을 사들였다.  인생에 없을  알았던 사장 노릇을 했던 그때.  해도 난리를 피웠을 해라 그러려니 하지만 아무튼 나는 굉장했다. 업종변경 없이 가게를 넘기고 마무리를 했으니 그 또한 복이었다.


이런 내게 미니멀리즘이란 당최  수도 없는 말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난여름을 강릉에서 보내며 본의 아니게 그런 삶을 살았다.   벌과 쪼리   그리고 가방 하나로 버틴 . 나는 흥미가 떨어진 옷가지나 가방, 신발을 중고거래로 자주 파는데도  옷장이  차있는 편이었다. 그런 내가 최소한의 옷을 돌려 입고  갖고 싶은  많은 내가 특별소비 없이  시간들을 살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이게 가능하구나 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고 이런 삶도 괜찮구나 라는 것도 깨달았다. 미니멈보다 맥시멈에 가까웠던 내게  시간들은 여러모로 좋았다.


게다가 강릉에서 임대한 집은 지금 우리 집의 절반 크기여서 짐을 늘어놓을 수도 없었다. 그것을 보고 있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 청소기를 몇 번씩 돌리고 짐을 계속 정리하고 치웠다. 작은 집이 깔끔하지 않으면 얼마나 괴로운지, 열심히 치우며 지냈다. 그러고 본집에 오니 웬걸 이 넓은 집이 더 부산스럽고 난잡해 보여서 몇 날에 걸쳐 집을 치웠다. 그때부터 나는 아무리 피곤해도 열심히 치운다.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은 식탁과 단정한 거실을 보는 게 얼마나 편안하던지, 이전에 매일 사들이고 매일 일을 핑계로 짐을 쌓아두던 때는 미처 몰랐던 감정이다.


겨울 강릉살이를 준비하며 가져갈 짐을 가늠한다. 여름보다는 옷도 두껍고 아이들 신발도 각자 최소  켤레 이상이 필요해 보인다. 여름에는 크록스 하나로 지냈는데 그보다는 무언가가  필요하겠다. 나부터도 외투를 두께별로 챙기고 싶고 신발도 그렇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어차피 가서 지내는 동안 그것이 얼마나 쓸모없는지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한다.


 날의 삶으로 내가 완전히 달라질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달라지리라 생각한다. 그러고 있는 중이다. 도시를 바꿔 사는   그리 대단한 일인가, 도시 바꿈을 핑계로 사는 내가 얼마나 간사한가 생각한 적도 물론 많다. 그런데 확실히 아니다. 도시를 바꿔 사는 것은 적어도 내게는 특별하다.  시공간에 철저히 속박된 내게는 더더욱 그렇다. 계속 그랬으면 좋겠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저 내가 잘 탈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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