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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Sep 14. 2022

쉬는 것도 노력이 필요해.


쉬기 위한 노력.


사실 나는 일을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는 편이고 그러는 동안 소파나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도 있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머리에는 일에 대한 계획으로 가득 차 있다. '미룸'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고 한다면, 나는 무작정 미루는 편은 아니다. 시간대별로 계획이 완벽하게 서있고 그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서야 비로소 일을 그 시간으로 미루고 눕는다. 이렇다 보니 어떨 때는 누워서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고 알람을 시간 단위로 해놓고, 그러고도 시간을 지나칠까 불안할 때도 있다. 또 어떨 때는 곧 그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누워서 그 일에 대해서만 생각한다. 결국 쉬는 것도 일하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로 누운 상태를 유지한다. 선잠이라고 들라치면 꿈에서 그 일을 하고 있다. 이러느니 일을 일찍 마치고 차라리 편하게 쉬는 편이 낫겠어, 하지만 그게 또 쉽지 않다. 결국 어떤 시간에 들어서야 힘이 생기지 않나.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을 때 생기는 어쩔 수 없는 힘. 마감의 힘. 그런 거.  



사실 나에게 일이 없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휴식은 일과 일 사이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즉 일은 늘 언제나 전제되어 있었다. 인간은 노동을 해야 한다는 말을 되뇌며, 내 노동을 사회 안에서 확인받아야만, 그래야만 나의 어떤 존재적 가치가 분명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더욱 그런 것이 나는 지겨운 학교를 오래 다녔고, 아이를 일찍 낳았다. 내향적이면서 외향적인 나의 에너지는 갈 길을 잃었다. 아이를 낳은 후 일주일에 하루 출강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일주일 내내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게 나가야만 내가 나로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마찬가지였다. 일을 늘려갔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만들었다. 가만히 있으면 내가 소멸될 것 같은 이상한 불안함에 휩싸였다. 자꾸, 자꾸, 무언가를 했다.



이런 나에게 지난 여름은 여러모로 아주 새로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쉬기로 했다. 학교는 종강을 했고 일하고 있는 학회에는 내 상황을 아는 분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방학 없이 하는 수업도 있었는데 그것도 여름 동안 쉬기로 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을 멈췄다. 아마 9월이 되면 돌아올 거라고 학원마다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우리는 강릉에서 무더운 여름을 찐득하게 붙어 지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우리가 노력해서 만들어낸 쉼의 시간. 쉬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했다. 쉬는 그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찍부터 적당한 집을 찾아야 했고 반쪽짜리 살림도 챙겨야 하고 시간도 조정해야 하고 시간을 만들어야 했다. 쉬는 동안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불안해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되는, 무언가를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살았다. 40일. 아주 가끔 불안함이 엄습했지만 그래도 내 걱정보다 훨씬 잘 지냈다.



생각해보니 그런 시간이 잘 없었다. 늘 뭔가 하고 싶어 애가 닳았고, 뭔가 하고 있었고 바쁘고 피곤했다. 몸 담은 분야가 지겨워 전혀 상관없는 다른 일을 하기도 했다. 모든 것에 열심이었다. 지나고 보면 그렇다. 근데 돈을 엄청나게 저축한 것도 아니다. 계속 벌고 계속 썼다. 웃기지만 정말 그랬다. 결국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애닳으며, 피곤해하며 지내야 되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게 됐지만 사실 그 질문은 오래가지 못했다. 초등학생 둘이 있는 4인 가족. 웬만한 공부와 취미생활과 여행과 치장을 위해서 일을 하는 거지. 별다른 이유는 없어졌다. 자아실현, 나의 존재적 가치, 그런 건 애초에 끝난 일이지 하고 피식 웃었다.



쉬기 위해 했던 노력들은  어떤 노력보다  힘을 주었다.  시간들은 우리 스스로를 충분히 가치 있게 했다. 순간순간의  마음들을 모두 새겨 놓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마저도 하나의 일이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래도 매일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일기를 쓰는 아이들의 기록에 마음이 든든해진다. 쉬기 해서는 노력이 필요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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