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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Mar 08. 2019

예민한 아이야,

7살 우리 아들 이야기






7살 큰아이는 어릴 때부터 예민한 기질이 다분했다. 포털사이트에 돌아다니는 예민한 아이 체크리스트를 보면 다 우리 아이 이야기같았다. 옷에 붙은 라벨은 다 뗐고 오감에 예민해서 사이다 탄산소리, 색연필 긋는 소리에 귀를 갖다댔다. 그리고 입으로 흉내냈다. 공기만 바뀌면 코를 큼큼거리고 있었고, 나와 동시에 미간을 찌푸렸다. 흔히 감각추구성향이 강한 아이들이 보이는 행동도 거진 다 했던 것 같다. 한곳을 계속 빙글빙글 돌거나, 곁눈질도 사물을 바라는 것 등... 다 쓸 수도 없게 다양한 행동들을 했다.



사실 그 행동들은 어떤 면에서 주의집중이 필요한 행동이라 참 많이 고민했다. 아닌 걸 알면서도 관련 서적이나 논문들을 보며, 이 아이가 혹시 내가 모르는 다른 어려움이 있지는 않은가 그런 고민 속에서 고생했던 때가 있었다. 이제  그런 때가 있었다, 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이 아이의 예민하고 까다로운 성향은 여전하다. 완벽주의 성향도 있어서 사실 내 아들이지만 품이 많이 들고 힘들기도 하다.



요즘에도 아이는 침대로 올라가면서 침대커버가 구겨진 것을 참지 못하고 그 작은 손으로 커버를 몇 번이나 이리저리 당겨서 구겨진 곳이 없게 만든다. 자기가 누우면 다시 구김이 갈 것을 왜 저러나 싶지만 아이의 선택이자 성향이자 희망이므로, 그냥 둔다. 아이가 그린 그림이 예뻐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잠깐만! 하고 티끌만한 지우개가루를 턴다. 지우개가루가 있는 그림을, 사진을, 용납하지 못하는 7살 아들이다.



어릴 적부터 컵은 여기 있어야 하고, 저건 어디에 있어야 하고 하는 게 굉장히 확고했다. 카봇의 어깨 각도만 달라도 화를 내고 장남감을 던졌다. 나는 그런 아이가 버거웠고 버겁고 앞으로도 버거울 것이다. 알고 있다. 나 말고는 아이의 그러한 성향을 온전히 받아줄 사람이 없음을, 가정 안에서만은 아이의 그런 면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조금 더 편안해지기를 독려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어렵다. 왜 무엇 하나 그냥 넘어가는 게 없을까, 같이 빽빽거리고 화를 낸다.



요 며칠은 또 혼자 많은 고민 속에 살고 있다. 유치원 새로운 반이 편성이 되었고 능숙해보이던 담임교사는 전화로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 11년차니까 잠시만 봐도 아이가 다 파악되겠지.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아이 4살 때 엄마같이 봐주던 담임교사의 이야기와 큰 차이가 없음을 느꼈다 . 우리 아이는... 클수록 좀 무뎌지고 클수록 좀 편해지려나 했지만 아닌 것 같단 생각이 켜켜로 쌓여가는 요즘이다. 나는 사실 우리 아이가 가진 이러한 성향들이 엄청난 강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는, 이것이 한국 교육 현장에서는 그렇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에서 아이의  문제요인보다 장점을 먼저 봐줄 교사는 많지 않다. 내 직업이 그래서 더 잘 알고 있다. 느닷없는 속단이 아니라 현실이다.



한 사람이 잘 성장하는 데는 내적독립성이 필요하다. 자기 자신을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안에 내적인 힘이 우선되어야 공부든 일이든 취미든 특기든 사랑이든 다 잘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이 교육 환경에서 자꾸만 튀어오르는 이 아이가 그렇게 존중받으며 스스로의 내면을 단단하게 할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일 년 뒤면 학교생활을 시작한다. 불보듯 뻔한 그 안으로 아이를 어떻게 넣을 것인가, 이 아이는 어떻게 시간을 보낼 것인가.




마음이 복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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