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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쉼표 Mar 06. 2020

가장 쉬운 일은,






우습게도 가장 쉬운 일은 짜증이나 화를 내는 것이다. 그냥 지금 어떠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가장 즉각적으로 할 수 있는 게 그것이다. 짜증/화는 생각/인내와 거리가 멀다. 한번 더 생각하고 한번 더 숨을 내쉬고 한번 더 참으면 짜증과 화를 멀리 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많은 사람은 그 한 번의 고개를 넘지 못하고 쉬운 방법을 택한다.


머리가 커가는 8살 아들은 제법 말대답을 많이 하고 내 감정적 공격에 매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자기에게 그런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나를 아이는 못견뎌하고 자주 똑같이 대응한다. 이제는 협박이나 회유로 되는 시기를 넘어서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는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다. 그래서 이야기 대신 제일 쉬운 방법을 택하고 금세 후회한다.



애 키우는 것 말고도 할 일이 많은 우리들은 언제나 힘에 부친다. 그럼에도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서 가족, 혹은 아이 기르는 일을 중시 여긴다. 가족중심인 한국의 공동체주의도 한몫하겠지.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가족이나 육아에 그만큼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매일 부딪친다. 그리고는 결국 또 제일 쉬운 방법을 택하며 다시 앓아간다.


실제로 내게 아이를 기르는 일은 "나"라는 사람이 할 여러 일 중에 하나였다. 만약 내게 육아 포함 4가지의 역할이 있다면  그것은 각각 25%씩 똑같은 비율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것보다 더 공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육아는 내가 해야 하는 여러 일 중에 하나였고, 다른 일과 비슷한 농도였다. 즐거웠다 지겨웠다 지쳤다 화났다 하는 일상적인 감정 속에 늘 놀아났다. 잘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효율적인 방법을 더 고민했다.



그러나 아이가 커갈수록 비율은 자꾸 뒤바뀌고 요즘은 내가 하는 여러 일 중에 아이를 기르는 일이 적어도 80% 이상은 되지 않을까 싶다. 늘 내가 중요했기에 이 변화는 매우 더딘 속도로 이루어졌지만 강압이나 이상한 책임감때문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깨달은 변화라 나에게는 적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제 더더욱 제일 쉬운 일들을 멀리 해야 할 것이다. 내 심신의 상태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내 심신의 영향 밖에 있기. 이 어려운 일을 언제쯤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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