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

by 혼자놀기

양재천을 걷다 보니 타워팰리스 가까운 곳 맨발로 황토 위를 걷는 사람들이 발 씻는 곳 가까이 수선화 밭이 있다. 노란 수선화가 곱게 피어있다. 아직 반쯤은 피지 않았다.


2주일 전 여행사를 통해 수선화 꽃구경을 가려고 예약했는데 인원이 차지 않아서 취소하고, 장성에 가서 고불매를 보고 왔는데, 아직 고불매가 활짝 피지도 않았고, 수선화도 보지 못해 아쉬웠었다. 그런데 오늘 뜻밖에 서울 한복판에서 수선화 밭을 만났다.

10여 년 전에 수묵화를 배울 때 선생님을 모시고 한겨울 황산 구경을 갔던 일이 있다. 상하이에서 기차 타고 항저우에 갔다가 황산 구경하고 항저우로 돌아와 서호 구경하고 상하이로 돌아와 관광하고 돌아오는 계획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항저우에서 폭설을 만나 황산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항저우는 당시 호텔 방을 빼면 어디도 난방이 되는 곳이 없는 지역이었다.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지역이라 했는데, 폭설에 습기까지 차니 추위가 보통이 아니었다. 스케줄이 다 망가지고, 길도 얼어붙어 미끄러워 호텔에 갇힌 신세가 되었는데, 중국어가 가능한 선생님이 어디로 전화를 해서 차를 가지고 와서 안내해 줄 중년의 여인을 불렀다. 몇 해전 중국에서 한 한중교류전에서 만나 친해진 중국 화가라고 했다. 그런데 이 여인이 항저우 지역 공산당 미술협회 서기장의 딸이었다. 우리가 너무 추워하니 실내 위주로 그림 구경을 하는 코스로 우리를 이끌었다. 그런데 문제는 실내가 더 춥다 라는 게 함정이었다.


자기 아버지 방에 가면 남쪽으로 창이 나있어 해가 들어 덜 춥다고 우리를 데리고 갔는데 정말로 눈 내린 밖이 내다 보이는 따스한 방이었다. 그리고 거기에 노란 수선화가 피어있었다. 한국서 온 화가(?)들이라고 자기네 수장고를 열고 그림을 가져와 구경시켜준다. 한참 구경을 하다가 차를 한 잔 마시는데 보니 탁자 밑에 작은 온풍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온풍기를 발견하니 멋쩍어하면서 수선화 때문에 몰래 조금씩 켜고 있다고 했다. 공산당 서기장방에도 겨울 난방이 불법인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도 수선화를 사랑하는 예술인이니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 주기로 했는데, 그가 칸막이 뒤로 햇빛이 들어오는 곳에 갖가지 수선화를 키우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때 수선화의 아름다움을 알았다. 나도 그 후 수선화를 사랑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시내 꽃밭에 수선화 튤립 등이 많이 보여서 좋았다. 그런데 우리 길에 심겨 있는 수선화는 중국서 보았던 작은 꽃봉오리가 아니고 좀 크다.


이런 이야기를 화초 많이 키우는 지인에게 하니, 보통 미니 수선화라고 부르는 종류인데 샛노랑 자그마한 꽃이 피어 아름답고, 물 주는 것 이외에는 손도 별로 안 가니 키워보란다. 자기 집 화분에 키우는 것을 하나 주겠다는데 선물 받아서 죽이는 것이 두려워 그냥 구경만 하겠다고 했다. 많이 구경하고 그림으로 남기면 물 주지 않아도 잘 견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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