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단어들을 담아] 한편에 품고 사는 엄마 내음
중학생 때 엄마가 많이 아팠다.
한 달 가까이를 누워만 있었는데,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엄마는 자신이 먼저 떠날까 싶었는지, 남은 셋이 본인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많은 것들을 정리했다.
옷장들에 라벨을 붙이고, 곰국을 한 솥 끓여 얼리는 엄마를 보며
이번이 아니라도 엄마가 나보다 먼저 떠날 거라는 걸 어린 나이에 느낄 수 있었다.
이후로도 나는 그리울 엄마의 음식을 생각한다.
열일곱에 집을 나와 떨어져 살아서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 늘 엄마의 음식이 그립다.
가끔 서울이 너무 춥다거나 트인 한강에 나가도 왠지 갑갑한 날이면 엄마 음식이 떠오른다.
생일이면 등장하는 엄마의 딸기 타르트,
야식으로 먹으라며 소분해주는 약밥,
겨울에만 먹을 수 있어 때를 기다리는 동치미 국수까지.
어느 겨울날, 집밥이 너무 그리워 동치미 국수를 만들어 본 적도 있었다
엄마가 알려준 레시피 그대로인데, 내 음식에는 엄마 내음이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 이야기를 하는데, 엄마도 외할머니의 음식이 그립다고 했다.
스무 살 어린 나이에 엄마를 떠나보낸 우리 엄마도 마음 한편에 엄마를 품고 산다.
며칠 전 엄마와의 통화 중 집밥이 문득 떠올랐다.
이제 같이 사는 사람이 있으니 잘 밤에 누워 시시콜콜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내리사랑 가득한 집밥과 엄마의 품이 필요했나 보다.
다음 주면 엄마 내음 가득한 택배 한 박스가 도착하겠지.
혹시 내용물이 흐를까 꽁꽁 싸매 보낸 택배를 하나하나 뜯으며,
늘 그랬듯 엄마에게 택배 잘 받았다고 전화를 하며,
그렇게 집에 드리우는 여름 햇살 마냥 따뜻한 시간을 좀 보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