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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고슴도치 Jun 05. 2024

소파

[닮은 단어들을 담아] 마지막 자취방 정리를 앞두고

마지막 자취방이 되어버린 집으로 이사할 때, 꼭 크고 안락한 소파를 들이고 싶었다.

하지만 닭이 울 때 잠들었다가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수업을 들으러 가는 대학원 생활이었고,

평일에 잠깐 사람 몰골을 갖추던 숙소 같은 집이었기에 고민만 하다가 1년이 흘렀다.


그 사이 나의 연인은 반려자가 되었고,

나의 반려자는 쇼파가 있어서 우리가 어디로 이사하든 데리고 가야 할 쇼파가 생겨버렸다.

내가 반려자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 쇼파는 쭉 존재했다.

연애 초반에는 우리가 언젠가 함께 사는 날이 올 거라 생각지 못했고,

좀 더 지나서는 이사하면서 버릴 수 있겠지 싶어서

매우 심각하게 취향에 맞지 않음에도 안일하게 넘겼다.

하지만 요지부동으로 거실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이 쇼파의 가격을 듣고 나서는

마치 시월드마냥 남편과 세트로 따라올 것이라는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쇼파만 없으면 이사 갈 집의 모든 인테리어가 완벽할 텐데..

법을 전공하고서 쇼파를 유기할 수 없겠지요..)


누군가 자신의 반려자를 안락한 쇼파라 칭하는 것을 들으며

나도 쇼파 같은 반려자를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앞에서 강의를 듣는 건지 조는 건지 꾸벅거리는 인간이 쇼파 같은 사람인가 바라보게 된다.


쇼파 하면 떠오르는 기억이 세네 가지 있다.


기억하는 첫 쇼파는 내 나이 여섯 살에 치매에 걸린 우리 할아버지의 쇼파.

할아버지는 쇼파에 앉아 풍경 감상하는 걸 좋아하셨는데,

할아버지가 쇼파에 앉아있으면 철부지 나는 다리로 미끄럼틀을 태워달라며

할아버지 무릎품을 비집고 들어가곤 했다.

할아버지의 이른 치매 발병으로 함께 나눈 추억이 많지 않은데,

유독 기억에 남은 건 퇴직 후 집에 덩그러니 계시던 할아버지가 유난히 환히 웃던 때여서 그런 걸까.


기억의 두 번째 쇼파는 아빠의 첫 장사가 호기롭게 망해버려,

사업장에 있던 쇼파를 집으로 들였던 우리 집 쇼파.

늘 가죽쇼파를 썼는데 패브릭쇼파여서 보들보들한 감촉이 좋았고,

그 쇼파에서 2002 한일월드컵을 응원했던 일곱 살의 내 모습도 사진으로 남았다.

다행히 가장으로서 늘 성실했던 우리 아빠가 금방 재기한 덕분에

이 쇼파는 나에게 좋은 어린 시절로 남았다.

아빠, 엄마는 어땠을까.

 그 당시 아빠가 홀로 뜬금없는 중국 유학길에 올랐었는데,

아빠는 어쩌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걸까.

사업을 정리하고 유학길에 오르겠다던 말을 듣고 그 길을 응원했던,

애 둘 딸린 전업주부 우리 엄마에게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기억의 세 번째 쇼파는, 첩첩산중 산골에서 동고동락했던 사람들과 함께 사온 이케아 안락의자. 맏이가 제일 먼저 자차 마련을 한 기념으로 다 같이 이케아를 다녀왔고, 그때 업어온 안락의자는 내가 좀 쓰다 다시 맏이에게 보냈다. 우연이 얽힌 인연은 꽤나 탄탄한 동아줄 같아서, 내 나이 스무 살에 처음 만나 함께 보낸 한 달 덕분에 나의 좌충우돌 20대에 늘 이 사람들도 있었더라. 막내에게 조장을 시킨 웃기고 재밌는, 때로는 꽤나 깊어진 우리들.


마지막 쇼파는 학부시절 밤을 새던 카페의 쇼파. 카페 쇼파가 뭐 그리 편했겠냐만은, 사랑하는 당신들과 함께 밤을 지새웠던 그곳이 나에게는 참 안락했다. 당신들이 새로 꾸려준 기반 덕택에

20대를 많이 웃으며 지냈더라. 많이 고마웠어.


리모델링 공사 비용으로 아직 새 쇼파를 다시 들일지 결정하진 못했지만,

나를 품었던 모든 쇼파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단단한 서른을 준비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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