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단어들을 담아] 보이지 않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나의 辯
꽤 오랜 기간 앓아온 불안장애로 인해, 나는 상행 에스컬레이터를 타지 못한다.
대부분 계단을 이용하지만, 증상이 심해 계단마저도 이용하기 어려운 날에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한다.
문제는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발생하는데, 대부분의 엘리베이터가 노약자용이기 때문이다. 노약자의 정의를 고려하면 나는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엘리베이터 이용에 아무런 문제는 없지만,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20대의 건강한 청년이다. 뭐 그런 시선까지 마음 쓰며 살아가냐고 나를 타박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평 남짓도 안 되는 엘리베이터가 꽉 들어차는 날이면, 나를 향한 무언의 질타들이 꽤 아리게 찔려온다.
얼마 전, 15년째 고질병으로 앓고 있는 터널 증후군으로 인해 손에 반깁스를 하고 다닌 적이 있다. 다리도 아닌 손에 한 반깁스가 이리도 나를 자유롭게 할 줄이야. 몇 층 가냐고 물어보며 손이 불편한 나 대신 버튼을 눌러주는 분도 계셨고, 오른손을 다쳐 불편하겠다며 한 마디 위로를 건네는 분도 계셨다. 한 손이 불편해 카드 꺼내는 속도가 느려도, 별 불평 없이 개찰구 뒷차례를 기다려주는 분들도 많았다. 반깁스가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선해하게 해 주었음이 분명했다.
선해(善解)란, 법률 용어 중 하나로서 문자 그대로 '좋게 해석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보다 자세하게는, 불명확한 사실관계가 있는 경우 가능한 당사자에게 좋은 방향으로 해석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 너머 타인의 세세한 사정까지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껏해야 한 1분, 스쳐가는 인연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불명확한 타인의 사정이 있을 수 있으니, 월요일 출근길에 반려자와 함께 나서면서 나도 오늘은 타인을 선해해야지 다짐해 본다.
세상이 좀 더 살만해지려면, 우리는 서로에게 선해가 필요하다.
날 선 시선은 시선의 주인에게도, 그 대상에게도 모두 불편한 흔적을 남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