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게 벼슬은 아닙지 말입니다 (2)

나도 내가 예민한 줄 몰랐지

by 흔한직장인


Ep1. 예민함을 세상에 드러낸 첫 무대,
웅변학원

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지 않았다. 지금은 국가 차원에서 보육비가 지원되지만 내가 자라던 시절엔 그런 게 없었고, 어머니는 직장에 다니시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비용을 더 들여가며 보육 시설에 보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득 TV를 보다 보면 유치원 생활이란 게 궁금해지기도 했다. TV 유치원 하나 둘 셋을 보면서, ’유치원에 다니면 정말 저런 활동들을 직접 할 수 있는걸까?‘ 하는 막연한 부러움 도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유치원에 가고 싶다고 졸랐고, 부모님은 내가 만 5세였던 어느 날 집 근처 웅변학원에 보내주셨다. 내가 다니게 된 웅변학원은 보육을 메인으로 하고, 중간중간 웅변 프로그램이 들어있는 사실상 어린이집에 가까운 시설이었다.


웅변학원에서의 첫 고비는 낮잠 시간이었다. 집에선 정해진 일과가 없었는데, 다짜고짜 시간이 됐으니 낮잠을 자라며 침대방에 아이들을 다 집어넣는 건 정말 기괴한(?) 광경이었다. 난 졸리지도 않았고, 사람도 많은 데다 아직 해가 중천에 뜬 시간에 잘 이유는 더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선생님 저 졸리지 않아요’ 라는 얘기를 할 용기가 없었다. 아무것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는 만 5세는, 우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 소리 내서 울지도 않고 그냥 방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낮잠시간이 끝나길 기다렸다. 낮잠 시간이 끝나자 눈물 콧물 범벅이 된 나를 보곤 선생님은 부모님께 연락했고, 나는 일과를 마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은 웅변 발표 날이었다. 이미 교육을 받은 숙련된(?) 친구들의 발표 후, 내 차례가 돌아왔다. 아직 처음이니 친구들 처럼 하지 않아도 되고, 자기소개나 좋아하는 음식 같은 편한 주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내려오면 된다고 했다. 선생님은 편하게 하라고 하셨지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었고, 난 전날 낮잠시간처럼 선채로 굳어 눈물을 뚝뚝 흘리다 단상에서 내려왔다. 그날 일은 트라우마가 되었고, 그렇게 이틀에 걸쳐 내 미취학 시절 기관 생활은 끝이 났다.



Ep2. 진짜 첫 사회생활, 학교

사회생활을 제대로 겪어보지 못한 채,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 후 한 달간은 ‘우리들은 1학년’ 책 한 권으로 하루 종일 수업을 해야 했다. 첫날 수업은 잘 마쳤고, 짝꿍과도 무난히 잘 친해진 듯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학교에 가려니 교과서가 안보였다.


책 없이 멀뚱멀뚱 앉아있을 네 시간의 공포가 눈앞에 아른거리자 학교에 갈 용기가 없어졌다. 여러 권 중 한 권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딱 그 한 권뿐인데 그게 없다니. 그것도 첫날 수업 하고 바로 다음날부터! 이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주목이 아니었다. 난 학교에 가지 않았다.


어머니는 뒤늦게 내가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렸고 왜 안 갔냐고 물어보셨는데, 나는 ‘교과서를 잃어버려서 혼날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어머니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내일 학교 가봐 서랍에 두고 온 거 아니야?“ 라고 하셨다.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정말 책상 서랍에 들어있었다.


무지. One of Them

학교 생활을 거치며, 나는 좀 소심하고 내성적이어서, 남들 앞에 서는 걸 싫어하고, 무리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며, Only one 보다는 One of them이길 원하는 ‘평범하고 흔한 사람’ 으로 나를 규정했다. 성적에서도 최상위권이 되기보단 뒤처지지 않는 게 목표였고, 학습 태도나 학교 생활에서도 특별히 칭찬받기보단 ‘모나지 않은’ 학생이길 원했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주목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이미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더 많이, 최고로 평범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인지. 되새김질

여중 여고를 거쳐 대학교에 진학하며 나는 부모님 품을 떠남과 동시에, 외국 생활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낯설었다. 혼성으로 외국인들과 함께, 외국어로 듣는 강의는 물론, 한국에서도 몇 번 해본 적 없는 주민센터 방문이나 은행 업무를 외국어로 한다는 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제 막 낯선 땅에서의 생활에 조금 익숙해졌을 2년 차에 드디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가 생겼다. 첫 남자친구였다. 나는 스무 살이 돼서 한 첫 연애였고, 남자친구는 학생시절 소꿉놀이 처럼 했던 연애가 다라며 거의 첫 연애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우리는 만나면 주로 같이 밥 먹고 카페에 가서 얼굴을 바라보며 얘기하는 데이트를 많이 했다. 남자친구와 만나 두세 시간 대화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데이트의 여운을 즐기며 대화를 곱씹곤 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구나, 이런 성장 배경이 있었구나, 나랑 비슷한 점이 있네, 앞으로 이런 거 해보면 재밌겠네 ‘.


대화를 곱씹고 나면 남자친구가 더 좋아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 좋아지는 속도가 서로 다른 게 느껴졌다. 나는 이미 푹 빠져 있는 것 같은데, 남자친구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남자친구는 사귄 지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나에게 일주일간 연락하지 말고 지내는 시간을 갖자고 했다.


’시간을 갖자‘


이건 사실상 이별 통보나 다름없었다. 아마 일주일이 지나도 남자친구는 다시 연락해오지 않을 것이다.

‘대체 나의 어떤 점이 문제여서 그가 이별을 결심하게 된 걸까. 그리고 나는 이 이별을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일주일 후 마지막으로 그에게 한번 더 연락해봐야 할까.‘

생각의 가지가 뻗어 나를 집어 삼킨, 영겁과 같던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이별을 받아들이고 한 달간의 즐거운 추억으로 남기기로 결정했는데, 뜻밖에도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약속한 일주일이 지나서 연락했다는 것이다.


나는 남자친구와 만나 이 일주일의 시간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봤다. 남자친구는 원래 계획돼 있던 일정들을 평소처럼 소화했고, 그중 조금 멀리 다녀올 일정이 있었다면서, 외지에서 사 온 기념품도 선물로 건네줬다. 일주일의 시간을 갖자고 한건 ‘피곤해서’ 였다고 했다.


’피곤했다‘


남자친구의 이 한마디는 또 내 머릿속에서 폭풍을 일으켰다.

‘내가 피곤하다는 거구나. 나는 한 달 동안 즐겁고 행복했는데, 날 이렇게 빠지게 만들고 그는 나를 피곤하다고 여기고 있었구나. 왜 이렇게 느끼기 전까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거지? 이미 내가 피곤해졌다면 이 관계는 사실상 끝난 거 아닌가?‘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그는 그 기간 동안도 날 생각했다며 선물을 사왔다.

‘이건 대체 뭐지? 이별 선물인가? 앞으로의 관계가 이어질걸 전제로 사 온 선물이 맞긴 해? 근데 그럼 대체 피곤하다는 건 뭐지?’

내 머릿속의 폭풍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남자친구는 말했다.


“내가 피곤하다고 하는 건 정말 몸이 피곤한 거야. 요 며칠 댄스 공연 준비하면서 너랑 만난다고 먼 길 자주 왔다 갔다 하면서도 만나서 피곤한 내색 안 하려고 많이 노력했거든. 근데 사실 진짜 너무 피곤했어. 다른 의미는 없어.

그리고 내 말에서 숨은 의도를 찾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A라고 말하면 그건 A' 나 B가 아니고 정말 A야”


여태껏 제 맘대로 뻗어 나갔던 생각의 가지들이 잘려 나갔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다. 나는 왜 그렇게 말 한디에 많은 의미를 덧붙이고 그 속을 끝없이 해석하려고 한 걸까. 이미 답을 받았는데도, 왜 답을 다른 데서 찾으려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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