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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동준 Jul 01. 2016

가까운 사람에서 귀한 사람으로

폴 투루니에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를 읽고














IVP

폴 투르니에 저

정동섭 역



책을 읽다보면 저자에게 영향을 준 책에 대한 언급을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조지 휫필드를 통해 헨리 스쿠걸을 알게 되었고, 또 윌리엄 로오를 알게 되었다. 폴 투르니에도 그런 방식으로 알게 된 사람이다. 투르니에를 소개해준 사람은 고든 맥도날드이다.


기독교가 가장 사랑한 정신의학자!


20대 중반 부터 심리학 언저리를 기웃거리며 독서를 하고, 내면에 대해 종종 성찰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온통 '나'의 내면에 대한 관심 밖에 없었다는 생각에, 그것이 성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너무 이기적인 성장욕이라는 반성을 했었다. 그렇게 한동안 - 실은 이기적인 내 마음이 문제였는데 - 심리학이 무슨 죄라도 지은 것 마냥 그쪽 동네 책들을 굳이 멀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구체적인 도움이 되어야하는 상황에서, 특별히 그러한 도움이 마음과 영혼에 대한 것인 상황에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의학과 신학을 만나게 하고, 인격의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투르니에에게 손을 내밀었다. 



1. 남들도 나 만큼 복잡하다.


부부와 연인들을 위한 책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연인이 읽어서는 실제적인 감각으로 거의 이해할 수 없고, 부부에게는 책장 마다 공감이 뚝뚝 묻어나는 말을 전하는 책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이다. 특별히 이 책을 통해 인상적으로 돌아보게 된 것이 타인을 바라보는 태도이다.


남들도 나 만큼 복잡하다.


남편들은 자주 아내를 보며 '아줌마'라고 한다. 아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욕구와 지향을 일순간에 밀어내고 단 하나의 확고한 이미지 안에 가두어버리는 단어가 바로 '아줌마'다. 이런 일은 얼마나 많은가?


그 사람 식탐이 심해!
그 친구 속물이야.
그 녀석은 진지한 건 싫어해!
어차피 말만 하고 안 할거잖아! 
.


이런 말들과 평가는 모두 사실일 것이다. 평가가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겨우 한두 가지 두드러지는 면을 본 것일 뿐인데, 그 사실 너머에 있는 타인의 복잡함을 보려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프레임 너머에 있는 존재의 복잡함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 경험적으로 볼 때 - 그리 많지 않다. 


사람들은 대부분 남에 대해 '잘 안다.' 자신을 설명하라고 하면 그렇게도 생각과 마음이 복잡해지고, 잘 표현이 안 된다는 말을 하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잘 안다. 그렇게 잘 안다는 확신, 혹은 무의식적 태도는 타인을 열심히 알아가야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한다. 아내에게 남편은, 남편에게 아내는 얼마나 '뻔'한 사람인가?


다시 말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타인에 대한 그 모든 정/확/한/ 사실이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그/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그녀는 온 힘을 기울여 알아가야할 독립된 인격체다. 내 머릿 속에 존재하는 고정된 인격체의 이/미/지/가 아니라, 정말로 살아서 숨쉬고, 매일 매일이 결코 같을 수 없는 살아있는 인격체다.


모든 것이 신비의 광휘에 싸여있는 연인 시절에는 알기 힘들지만, 부부의 삶에 있어서 서로를 '알아가야 할 인격체'로 바라본다는 것을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진다.


예수님께서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주신 원칙이 딱 한 가지 있다.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다른 사람도, 내 아내도 나 못지 않게 다면적인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는 내내 예수님의 저 말씀이 생각이 났다.


우리는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서 쉽게 평가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아직 말하지 못한 것이 많이 있다고, 나에게는 아직 보여주지 못한 가능성이 무궁하다고 항변하고 싶어한다. 바로 그러한 마음이 다른 사람의 가슴 속에도 있는 것이다. 내가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처럼 다른 사람도 존중하는 것, 그 간단하고도 자명한 것이 생생한 삶의 현장에서는 그렇게도 쉽지가 않다. (쉽지가 않더라...)


낮선 사람에게 속 마음을 더 잘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때문이다. 나를 선입견 없이 바라볼 것이라는 안도감. 그것 때문에 평생을 함께 산 사람에게도 말 못할 일들을 낮선 이 앞에서 오히려 편하게 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기대어 쉴 한 그루 나무가 된다는 것은 신뢰감을 얻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요구한다.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는 사랑 외에 어떻게 그런 신뢰감을 만들 수 있을까? 죄로 얼룩진 내면을 부여잡고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가더라도 귀인을 맞이하듯 안아주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지 않고서 어떻게 그런 신뢰감을 만들 수 있을까?



2. 인상적 구절


많은 인상적 구절이 있었다. 그 중 가장 깊게 남은 구절이 있다.


어느 정도까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만 완전히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p.30)


타인을 알아간다는 것, 그리고 타인에게 나를 알아갈 기회를 준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다른 어떤 일보다 비상한 용기를 발휘해야 하는 일에 사랑의 바탕이 없다면 그 시도는 얼마나 잔인한 상처로 끝을 맺겠나?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너무 중요한 일이다. 드러냄은 곧 더 많이 사랑해야 할 이유를 준다. 야고보서에 이런 말씀이 있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야 5:16)


사랑의 공동체를 생각할 때마다 머릿 속에 맴도는 말씀이다. 아무 것도 탓할 것이 없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부족한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사랑이 그 부족을 채우는 것, 오히려 부족함으로 인하여 더 사랑할 이유를 발견하는 사이, 그렇게 서로를 위한 사랑 속에서 신적인 마음을 알게 되는 곳. 그것이 살아서 볼 수 있는 천국이 아니면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투르니에 자신이 그렇게 아내와의 관계에서 온전한 드러냄의 감격을 경험한 바 있다. 그리고 이제 내가 그러한 감격 속으로 걸어들어가길 원하고, 또 다른 이들의 손을 잡고 그곳으로 이끌 수 있기를 바란다.


오래간만에 따뜻한 심리학을 만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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