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기획자 수업을 마치며
수원시 평생학습관 웹진 Wa에 11월 칼럼으로 기고한 글입니다.
원문은 http://www.wasuwon.net/122616 에.
선생은 학생에게 스스로의 길을 가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자기가 먼저 간 길을 따라 걷게 함으로써 영원히 자기 뒤에 있게 만들 뿐이다.
프랑스의 미학 이론가이자 교육비평가인 자크 랑시에르가 그의 책 『무지한 스승』에서 말한 교육의 아이러니다. 선생의 유식함은 학생의 무식함을 만든다. 마치 양팔 저울처럼, 선생의 유식함이 빛날수록 학생의 무식함의 그늘도 짙어진다.
부천문화재단의 의뢰로 시작했던 지역문화기획자 양성사업의 수업을 이제 막 마쳤다. 대학원 1학기 수업에 준하는 강도와 시간 동안 나는 혹시 유식한 선생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문화예술분야는 항상 기획자 기근이다. 좋은 기획자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 같다. 게다가 몇몇 대학의 대학원에서 진행되는 문화예술경영 전공 과정 외에는 딱히 기획자를 교육하는 곳도 없다. 그래서 기획자 양성 과정은 대개 문화재단이나 문화예술기관에서 개설하는 특별한 프로그램의 형태로 진행된다. 축제 기획, 문화예술 기획, 생활문화 기획, 지역문화 기획 등 다양한 이름이 있었지만 진행 방식은 대동소이했다.
(1) “문화예술기획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정의에 대해 배운다.
(2) 관련된 성공사례를 배운다.
(3) 회계, 행정 등의 최소한의 실무에 대해 배운다.
(4) 공연장 탐방, 지역 탐방 등의 현장 체험활동을 한다.
대략 이런 포맷으로 12회에서 15회 정도의 특강을 묶어놓는 방식이다. 각 회차별 특강 강사는 나름 유명한 사람들이다. 자기 문제는 결국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명망 있는 사람을 만나면 마치 혜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하지만 강사의 화려한 성공 사례는 수강자의 삶 밖에서만 빛날 뿐이다. 이상하게 그 사례를 내 삶의 자리로 가져오면 빛이 사라진다. 그러면 그게 방법론의 문제인지, 나 자신이 문제인지 헷갈리게 된다. ‘내가 좀 더 뛰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내가 좀 더 진정성 있게 다가가지 않은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다.
나는 이런 과정이 마치 가정폭력 피해자들에게 학습된 무기력이 생기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지금’, ‘여기’에 놓여있는 학생들의 현실과 과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데, 선생의 성공사례 PPT는 싸이키 조명처럼 빠른 속도로 정신없이 돌아간다. 그렇게 학생의 시선은 PPT 화면에 고정된다.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학생은 문제의 핵심이 자기 노력이 아닌 구조에 있다는 사실을 보기 힘들어진다.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폭력이 반복되는 구조의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자신의 사랑과 이해심 부족이라는 덫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수업을 준비할 때마다 나름 결심한 것이 있었다.
무용담을 늘어놓지 않겠다.
지식 자랑을 하지 않겠다.
강사인 나에게서 시작하지 않고, 수강생의 삶에서부터 시작하는 수업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기획한 첫 수업이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였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되, ‘나’를 중심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자기를 소개해보라는 것이었다. 반응은 의외로 좋았다. 수강자들은 다른 이의 ‘이야기’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기도 했다.
아이디어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따왔었다. 샌델은 그의 책에서 20세기 초반의 인종차별, 학살 등 과거사 문제를 왜 지금의 세대가 책임을 져야하는지 물었다. 그리고 그 대답으로 우리 삶은 결코 외따로 떨어져있을 수 없고 항상 어떤 이야기의 일부일 수밖에 없음을 역설했다. 자신이 속한 이야기에 대한 책임을 말한 것이다. 나 스스로는 문화기획이 자기의 삶에서 시작해서 공동체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지만 나도 잃지 않고, 공동체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샌델이 말한 ‘이야기에 대한 책임’이라는 아이디어는 문화기획의 방법론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 번째 시간에 진행한 “우리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는 기대처럼 진행되지 않았다. 지난 시간 타인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발견하기도 했던 수강생들인데, 이제 본격적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찾아보자는 접근에서는 방향을 잃었다. 왜였을까? 지금 돌아보면 나의 이야기와 타인의 이야기를 충분히 응시할 시간을 주지 않고, 너무 성급하게 ‘공동체’를 들이밀었던 것이 실수였다. 나, 그리고 내가 속한 이야기, 그리고 타인의 이야기가 잉크 번지듯 서서히 번져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 것을 가만히 응시하기도 전에, ‘우리’를 찾으라고 했다. 결국 ‘나’를 잃었고, 어거지로 찾은 ‘우리’ 역시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전체 과정의 중반 정도 다다랐을 때, 김인규 선생님께서 퇴직을 하셨다. 퇴직의 변을 칼럼의 형식으로 썼는데, 그의 글이 수업을 하는 내내 가슴을 찔렀다.
수업을 성공시켜야 하는 것이 교사의 존재성이자 강박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학생에게 수업을 따라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다면, 교사에게는 그것을 실현하는 책임이 주어져 있다. ‘수업이 학생에게 필요한 것인가는 그 다음 문제인 셈이다.’
- 웹진 와, 김인규의 <난 왜 학교를 떠나고 싶었을까> 중에서 -
‘우리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를 원활하게 진행하지 못한 후, 나는 급속도로 성공적 수업이라는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가장 갈등했던 것은 나의 수업이 학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다는 죄책감이었다. 나의 입지를 공고하게 만드는 과정, 그것을 위해 타인이 소외되어야 하는 과정은 아닌지 수없이 반문했다. 자주 질문을 던진 이유는 ‘아니’라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1회 특강이 아닌 한 학기 분량의 수업을 통해 가르치는 일이 교사의 자기 불안과 싸우는 일이라는 것을 배웠다. 학생들에게 ‘휘둘리는’ 상황은 매 시간 발생했다. 지각과 결석, 참여하지 않고 그냥 있기 등의 상황은 마치 달리는 말 위에서 지도를 보며 길을 찾는 것 같은 임기응변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그 불안을 수용할 수 있을 때, ‘휘둘림’은 서로의 ‘차이’가 되고, ‘차이’는 ‘소통’의 필요가 된다는 것을 수업이 끝난 지금에야 어렴풋하게 깨닫게 된다.
수강생 중 한 명이 과정이 끝날 무렵에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이 말한 가치들이 문화기획에서 중요한 것은 알겠는데,
그걸 다 고려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인정한다. 공급자가 아닌 이용자의 위치에서 생각하기. 삶을 대상화하지 않기. 체험이 아닌 경험으로서의 문화기획 하기. 공유지식 만들기. 등등.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하면서 행정의 필요도 맞추고, 제한된 시간과 돈 안에서 ‘좋은’ 문화기획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일 것이다. 나는 그 수강생에게 “그래서 솔직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는 이런 것들이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이다.” 이렇게 인정할 때, 다른 사람이 함께 할 자리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 말은 내가 진행한 수업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무용담 자랑하기 수업을 만들고 싶지 않다.”
“수강생의 삶에서부터 시작하여 끊어지지 않는 흐름으로 수업을 만들고 싶다.”
“잘 만든 교안을 수행하는 퍼포먼스가 아니라, 수강생과 함께 구성하는 대화로서의 과정을 만들고 싶다.”
내가 보고 싶었던 수업은 이런 모습이었고, 내가 힘껏 구현해볼 수 있었던 모습은 겨우 문제의식을 던진 정도였다. 듬성듬성 비어있는 수업의 내용들을 참여라는 이름으로 수강생에게 ‘채우라!’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함께 만들고 있다는 경험. 다음 수업에서는 혹 가능할 수 있을까? 희망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