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_지금은 기후열파시대_아이슬란드대학교
43_지금은 기후열파시대
아이슬란드대학교(University of Iceland, UI)
자연에서 지속가능성을 찾는 대학
아이슬란드대학교(University of Iceland, UI)는 수도 레이캬비크를 중심 거점으로 두고, 빙하·화산·연안 등 독특한 자연환경을 가진 지방 거점과 긴밀히 연결된 연구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연구중심 국립대학이다. 이 대학의 핵심 연구 기관인 지속가능성연구소(Institute for Sustainability Studies)와 북극연구·연구센터(Arctic Research and Studies Center)는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을 가로지르는 학제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하여, 지역 공동체와 함께 지속가능성과 회복력을 강화하는 연구를 수행한다. 이들의 연구 접근법은 단순한 환경 적응을 넘어 지역의 사회·경제 구조를 재편하는 ‘전환(transition)’을 지향한다.
소박한 풍요(Frugal Abundance)에 대한 고민
아이슬란드대학교(University of Iceland, UI)가 기후적응과 지역 지속가능성 연구에서 핵심적으로 채택하는 철학은 ‘소박한 풍요(Frugal Abundance)’이다. 이 개념은 단순히 절약하거나 소비를 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존중하며 그 안에서 번영을 이루는 삶의 방식을 뜻한다. 즉, 무한 성장을 전제로 한 자원집약적 경제 구조를 지양하고, 지역이 스스로 가진 자원과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 물질적·사회적 풍요를 창출하는 전략이다.
이 철학에서 중요한 출발점은 ‘자원의 질과 사용 방식’이다. 무분별한 소비를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지역에서 쉽게 접근 가능한 재생 가능한 자원(지열, 수력, 어업 자원, 전통 작물 등)을 활용해 생산과 소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UI 연구팀은 에너지와 식량, 필수 서비스의 지역 자급률(local self-sufficiency)을 높이는 방안을 중점적으로 모색한다. 예를 들어, 지열 발전과 난방망을 최적화해 외부 연료 수입 의존도를 낮추고, 지역 어업·농업 시스템을 재설계해 외부 식량 수입에 따른 공급망 불안정을 완화한다.
또한, ‘사회적 신뢰와 공유 인프라’의 역할을 매우 중시한다. 공동체 내부의 협력 관계와 신뢰 자본은 위기 대응 속도를 높이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마을 단위의 공유 창고, 공용 장비 대여, 지역 통신망과 에너지 네트워크 등은 단순한 편의 기능을 넘어 기후 충격 상황에서 생존과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인프라로 기능한다.
이러한 ‘소박한 풍요’의 실천은 외부 의존도를 체계적으로 낮추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글로벌 공급망이 교란되거나 국제 시장 가격이 급등하더라도, 지역 내에서 에너지와 식량, 기본 서비스의 상당 부분을 스스로 공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 결과, 기후변화로 인한 해양 열파, 겨울 온난화, 폭풍, 빙하 융해 등 복합적인 환경 충격 속에서도 빠르게 회복하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높은 회복력(resilience)을 확보하게 된다.
UI의 연구 철학은 단순한 환경보호나 경제절약 차원을 넘어, 기후위기 시대에 적응하고 번영하기 위한 사회·경제 시스템 전환의 청사진으로 기능한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 단순히 생존을 넘어, 기후변화라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주체적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환경 적응(adaptation)에서 전환(transition)으로
일반적으로 ‘환경 적응(adaptation)’이라 하면,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 조치를 떠올리게 된다. 예를 들어, 해수면 상승에 대비해 방파제를 세우고, 폭풍 피해를 복구하며, 변화된 기후 조건에 맞춘 새로운 작물 품종을 도입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적응 전략은 현재 직면한 위험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단기적 문제 해결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아이슬란드대학교(UI)가 지향하는 ‘전환(transition)’은 대응의 범위를 훨씬 넓히고 깊게 확장한다. 전환은 기후 충격에 단순히 맞서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경제의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과정이다. 이는 제도와 운영 원리를 다시 세우고, 생산과 소비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며, 장기적인 불확실성과 변화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번영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UI가 말하는 전환은 단순한 방어가 아니라, 기후위기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안정성과 회복력을 동시에 확보하는 ‘새로운 질서의 창조’라고 할 수 있다.
대학이 전환에 나선 이유
아이슬란드대학교(UI)가 제시하는 전환의 개념은 단순한 환경 대응을 넘어, 지역의 지속가능성과 자율성을 동시에 강화하기 위한 네 가지 핵심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에너지 구조 재편이다.
UI는 무엇보다 외부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고, 지역에서 생산 가능한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특히 아이슬란드가 강점을 가진 지열과 수력 자원은 지역 에너지 자립의 핵심 기반이 된다. 이를 위해 중앙집중형 전력망에서 벗어나 마을과 지역 단위의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에 공동체 구성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의사결정권을 확대한다. 이러한 변화는 에너지 공급의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지역 주민이 주체적으로 에너지 정책을 형성하는 기반을 마련한다.
둘째, 식량 및 생계 기반 재구성이다.
전환의 또 다른 축은 식량과 생계 기반을 지역 순환 구조로 재편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통 어업과 친환경 양식 방식을 복원하고, 지역에서 잡힌 어획물이 지역 내에서 우선 소비되도록 유통망을 설계한다. 농업 부문에서는 해당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적합한 작물을 재배하고, 온실 재배 기술을 적극 도입해 기후변화에도 안정적인 식량 생산이 가능하도록 한다. 더 나아가 농업, 어업, 축산업과 가공·유통·소비까지 모든 과정이 지역 내부에서 연결되는 통합 순환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외부 공급망 충격에 대한 회복력을 강화한다.
셋째, 경제·사회 시스템의 분권화이다.
UI의 전환 전략은 중앙집중형 의사결정 구조를 해체하고, 권한을 지역과 마을 단위로 이전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이를 통해 지방정부, 공동체 조직, 협동조합이 자원 관리와 경제 계획의 주체로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지역 통화, 협동 금융, 사회적 경제 모델을 도입하여 외부 자본에 대한 의존도를 최소화하고, 지역 내부에서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순환시키는 구조를 만든다. 이는 경제적 자립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정치적 자율성까지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넷째, 문화와 정체성의 재정립이다.
마지막으로, UI는 기후변화 시대에도 지역 고유의 언어, 전통 지식, 생활방식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것을 전환의 중요한 축으로 본다. 지역 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축제와 의례, 문화행사를 통해 사회적 결속을 강화하고, 자연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단순한 자원 이용이 아닌 상호 돌봄(care)의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이를 통해 공동체는 생태적 전환과 문화적 정체성 보존을 동시에 실현하며,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지속가능한 삶의 기반을 유지하게 된다.
이 네 가지 축은 서로 독립된 영역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며 지역 공동체가 기후위기 속에서 장기적으로 번영할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한다.
UI의 전환 전략과 소박한 풍요의 실현
아이슬란드대학교(UI)는 기후변화를 단순히 환경이 변화하는 현상으로만 보지 않는다. 이들은 이를 공동체의 생존·정체성·경제 구조 전체를 뒤흔드는 구조적 변화로 인식하며, 그 대응 방향을 ‘적응(adaptation)’이 아닌 ‘전환(transition)’으로 설정한다.
빙하 인근의 공동체들은 빙하 후퇴로 인해 수자원 공급 패턴이 변화하고 홍수 위험이 증가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UI는 이들과 협력해 수자원 관리의 공동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빙하 관광 수익을 기후 적응 기금으로 전환해 방재 인프라와 재생에너지 설비에 투자하도록 했다. 또한 빙하수를 이용한 소수력 발전과 지열발전을 결합한 마을 단위 하이브리드 전력망을 설계해 에너지 자급 기반을 강화했다.
화산 지대에서는 지열과 수력을 결합한 복합 에너지 시스템을 개발해 외부 에너지 의존을 줄이고, 지열 온실 농업을 통해 연중 작물 재배가 가능하도록 했다. 주민들은 화산재와 홍수 대응 훈련에 직접 참여해 재난 대비 역량을 높였으며, 이를 통해 에너지와 식량 모두에서 높은 자립도를 달성했다.
어업 공동체의 경우, 기후변화로 어종 분포가 바뀌고 어획량이 감소하자 단기적인 조정이 아닌 어업 생태계 복원에 나섰다. 전통 어법을 되살리고, 어획물의 현지 가공·유통 시스템을 구축해 부가가치를 지역에 환원했으며, 어민 조합과 지방정부가 해양 보호구역 관리 규칙을 공동으로 결정하는 체계를 마련했다.
이러한 전환 모델은 외부 에너지·식량 의존도를 줄이고, 지역 자원의 순환 이용과 부가가치를 내부화하며, 자원 관리 권한을 분권화하고 주민 참여를 확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동시에 지역의 문화와 전통 지식을 계승·재해석함으로써, 기후 충격에 강하고 삶의 질을 유지하는 ‘소박한 풍요(Frugal Abundance)’ 기반의 지속가능한 공동체를 구현하게 되었다.
기후열파시대의 전환: 소박한 풍요와 지역 자립성의 길
기후열파시대에 UI가 지향하는 전환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거나 재난에 대응하는 임시 처방이 아니라, 경제·사회·문화 전반을 다시 설계하여 기후위기의 구조적 원인을 줄이고 회복력을 강화하는 장기 전략이다. ‘소박한 풍요(Frugal Abundance)’라는 철학은 과도한 소비를 지양하고 지역 자원·지식·관계를 기반으로 삶의 질을 높이며, 이를 통해 외부 에너지·식량·자본 의존도를 최소화한다. 이는 기후열파로 인한 불확실성과 반복적 충격 속에서도 공동체가 자율성과 안정성을 유지하며, 지속적으로 번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전환 모델로서 의미를 갖는다.
<참고문헌>
University of Iceland – Institute for Sustainability Studies. (2023). University of Iceland Sustainability Report 2023. Reykjavík: University of Iceland.
https://english.hi.is/sites/default/files/2024-11/uis-sustainability-report-2023_compressed.pdf
University of Iceland (UI). (2025). UI’s goals for minimising effects of climate change. Reykjavík: University of Iceland.
https://english.hi.is/about-ui/sustainability/uis-goals-minimising-effects-climate-change
N. Spittler, B. Davíðsdóttir, E. Shafiei, et al. (2020). The role of geothermal resources in sustainable power system planning in Iceland. Renewable Energy, 153, 1081–10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