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시리즈] 1편 – 생존선 아래에서
사람이 죽지 않을 정도로만 도와주는 건, 과연 '도움'인가? 아니면 그냥, 죽지 않게만 놔두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방식의 생존 유지인가?
10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1원을 주고, 그 1원으로 생색을 내는 사회.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실이다. 복지라는 단어를 쓰지만, 실상은 복지라기보단 '견디기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살려는 준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게 하진 않는다.
문제는 단순하다. 절대적으로 돈이 너무 적다. 필요한 만큼은커녕, 1원을 주고 '지원했다'라고 포장한다. 그 1원은 생존이 아니다. 그냥 체온 유지다. 그런데도 뉴스에는 '지원 확대'라고 나오고, 담당 공무원들은 '도움드렸습니다'라고 말한다. 생존의 문턱에서 겨우 버티는 사람들에게, 시스템은 자비가 아니라 자랑을 건넨다.
그런데 이 절대적 부족함은 단지 생존의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 위에 낙인이 얹히고, 시선이 더해져, 점점 더 안으로 숨어들게 만든다. 어떤 이들은 말한다. "낙인이 사람을 죽인다. 시선이 문제다. 멸시가 사람을 무너뜨린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진짜는 그보다 더 원초적이다. 돈이 없다. 생존이 안 된다. 살아야 낙인을 느끼지, 못 살면 그전에 끝난다. 낙인 효과가 작동하는 것도, 최소한 그 사람이 '존재'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낙인은 지원이 작을 때 더 커진다. 달랑 1원을 받으면서도, "나는 무가치하다"라고 느낀다. 그래서 숨어야 한다. 수급자라는 걸 숨기고, 기회가 와도 포기하게 되고, 결국 '받는 사람'으로만 남게 된다. 복지가 기회가 아니라, 딱지를 붙이는 행정 절차로 전락한다.
이제 묻자. 이게 과연 도움이었는가? 아니면, 무언가를 증명하려던 시스템의 실험장이었던 건 아닐까?
인간은 구경거리가 아니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 복지의 역할은, 최소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준을 보장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살아만 있게 해선 안 된다. 일어서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단순하다. 필요한 만큼 주는 것이다. 생존선 위로 끌어올릴 만큼, 기회가 작동할 만큼, 그 정도의 금액을 주는 것. 그게 복지다. 그게 도움이다. 그게 사람이 사람을 돕는 방식이다.
이 글은 해결책을 말하지 않는다. 그냥 문제를 남긴다.
2025년 기준, 1인 가구 생계급여는 월 765,444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