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이라는 희망이, 왜 독이 되어 돌아오는가
정년을 연장하자는 말이 자꾸 들린다. 더 오래 일할 수 있다는 말은 듣기엔 그럴싸하다. 하지만 그 말이 누구의 등을 밟고 나오는 소리인지를 생각해 보면, 마냥 반가워할 수 없다.
한국은행은 최근 정년 연장이 현실화되면 기업의 부담이 급증해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요약하자면, “노인들 오래 일하게 하면 청년들 설 자리가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게 막연한 걱정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3년 정년 60세가 법제화됐을 때 실제로 고령자 고용은 늘었지만, 청년 고용은 줄었고 중년층부터는 월급이 깎였다. 이 구조가 그대로 유지된 채 정년만 늘리면? 피해는 청년과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우리의 임금 체계는 ‘연공서열’이다. 오래 일하면, 실력이 없어도 돈을 더 받는다. 나이와 경력이 곧 연봉이다. 그러다 보니 기업은 연봉이 비싼 고령 직원은 해고하기 어렵고, 신입 채용은 줄인다. “신입이 안 뽑힌다”는 말은, 결국 누군가 자리를 비켜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청년들은 문 앞에서 계속 두드린다. 안에서 문을 잡고 있는 누군가는 말한다. “좀 더 두드려 봐. 진심이면 열릴 거야.” 그리고는 자물쇠를 하나 더 잠근다. 노력하라는 말은 넘치지만,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구조 앞에서 청년들이 느끼는 건 성취가 아니라 자조다. 그 자조가 쌓이면, 결국 냉소밖에 남지 않는다.
이 와중에 정년 연장이라는 ‘희망’은 청년에게 절망으로 다가온다. 더 오래 자리를 지키는 선배 세대가 많아질수록, 후배 세대가 차지할 자리는 더 줄어든다. 지금도 청년 실업률은 높고 구직난은 심각한데, 과연 이런 선택이 미래를 위한 결정일까?
정년 연장이 잘못된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썩은 구조는 그대로 둔 채 희망적인 말만 붙이면, 결국 누군가는 짓눌린다. 한국은행의 경고처럼, 정년 연장은 경제 기반을 흔들 수 있다. 그건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기회의 문제이며 생존의 문제이다.
필요한 건 나이나 연차, 학벌이 아니라 모두가 출발선에 설 수 있는 구조다. 청년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 자리를 나누는 사회여야 한다. 정년 연장은 그 자체로 나쁠 게 없지만, 지금처럼 낡은 임금 체계와 고용 구조 위에 올려놓는다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다. 희망도, 기회도, 그리고 안정도—그 모든 것이 특정 세대에게만 배당될 때, 그것들은 독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