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혐오의 정치: 실제, 이론, 역사(37쪽-68쪽)
a) 동성애 인권보고 대표반대론자: 폴 캐머런
‘인류애 정치’를 논하기에 앞서 혐오 정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 가운데 가족연구소(Family Research Institute)의 창립자인 폴 캐머런의 수사는 주목할 만하다. 폴 캐머런의 주장은 미국 성정치에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였는데, 캐머런의 논리구조는 앞으로 살펴볼 ‘콜로라도주 수정헌법 제2조’ ‘로머 대 에반스 판결’ 등 반동성애 운동진형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b) 캐머런의 수사의 두 가지 목적
b-1) 게이에 대한 역겨움과 혐오
b-2) 그들의 행위를 질병이나 위험과 연관
*위의 목적에 따라 ‘혐오 스러운 행위’의 결과 B형 간염이나 에이즈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41쪽 참고).
c) 캐머린식의 극단주의는 특수하고 예외적인 사례가 아니다
공동체의 오물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그 불편감을 투사함으로써 지배적인 집단은 자신을 깨끗하고 천상적인 존재라고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44쪽)
단지 혐오한다는 이유로 직접적 피해를 끼치지 않은 특정 집단에 가해지는 법적 불이익은 과연 정당한가? 제3자에게 (직접적으로)끼치는 피해를 법적 규제의 기준으로 삼지 않으려 한 만큼, 하나의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누스바움은 새로운 법적 기준으로써의 혐오를 주장하는 대표적인 두 사람을 언급한다. 데블린은 ‘공중도덕’의 관점에서, 레온 카스는 진화 과정에서 합목적적로 설계된 하나의 ‘경고’로써 혐오를 주장한다.
a) 데블린 이론
아무리 상호합의한 성인 간의 행위라 하더라도 확립된 도덕의 지배를 약화시키는 경우에는 사회적 연대를 침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타인에게 급박한 피해를 입힐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이 허용된다는 존 스튜어트 밀의 원칙을 채택할 수 없었다.(47쪽)
데블린은 아무런 피해를 미치지 않는 특정 행위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을 느낀다면, 도덕적 연대의 약화 곧 해체의 징후로 보았다. 그렇기에 데블린에게 있어서 혐오는 ‘공중도덕’을 약화시키는 하나의 악덕으로 보았다. 데블린에게 있어 규제는 관습적인 도덕규범을 위반한 자들을 처벌하는 수단으로써, 사회 그 자체가 스스로를 방어하는 수단인 셈이다. 하지만 미국의 헌법적 전통을 무시하는 해석으로, 권리를 누리는 기본단위는 개인이지 그가 속한 집단이 아니다.
평등한 존중의 정치는 미국의 헌법적 전통에서 두 가지 개념과 맥을 같이 한다. 첫째, 권리를 누리는 기본 단위는 개인이지 그가 속한 집단이 아니다. 둘째는 이와 관련된 개념으로서, 개인에 대한 존중은 그를 둘러싸고 있는 자유의 영역에 대한 보호를 포함한다는 생각이다.(25-26쪽)
a) 레온카스 이론
카스는 혐오가 일종의 신뢰할 만한 경고라고 보았다. 인간은 혐오에 의존함으로써 끔찍한 행위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추측하건대, 그는 강력한 감정적 반응을 통해 좋고 나쁜 것을 가릴 수 있도록 (아마다 신에 의해) 인간의 본성이 합목적적으로 설계되었다고 믿는 것 같다.(48쪽)
레온카스의 주장처럼 혐오가 하나의 신뢰할 수 있는 합목적적 감정이라면, 역사적으로 사회가 혐오했던 다른 소수자들과 동성애의 차이를 설명해야만 한다. 레온카스는 외국인, 장애인, 인종 등 사회가 혐오했던 특정 집단에 대한 법적 제제를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동성애와 앞서 거론된 소수자혐오 간의 차이를 설명해야만 할 것이다. 또한 혐오가 특정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면, 그가 주장하고 있는 동성애를 제외한 다른 부분도 불법행위로 간주되어야 하는 난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즉, 혐오를 근거로 동성애를 불법행위로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혐오 감정은 단순히 불쾌감이나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과도 다르다. 혐오에서 중심개념은 ‘오염’이다.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은 대상이 어떤 식으로든 자기 안으로 들어와 자신을 더럽힌다고 느낀다. (중략) 무언가 저열하거나 불쾌한 것을 섭취하면 섭취한 사람 자신이 저열하거나 불쾌한 존재로 전락한다는 것이다.(54쪽)
b) 원초적 대상: 인간의 동물성과 유한성을 일깨워주는 존재들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오랜 시간 동안 타인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게다가 다른 동물에 비해 더 크게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며, 일정 나이가 지나면 자신의 죽음도 인식하게 되며, 죽지 않기를 바란다. 이렇게 인간의 삶에는 갈등과 모순이 내재된다. 인간은 이러한 유한성과 부정성을 부정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이러한 감정이 투쟁에 반영되고 있다. 미셸 푸코가 <헤테로토피아>에서 말했듯이 인간에게 있어 최초의 유토피아는 ‘몸(육체)’ 완성된 이미지로서의 육체. 그러니까 몸의 형상을 띠고 있는 영혼이란 말은 설득력이 있다.
끈적거린다든가 냄새가 나고 진액이 흘러나오는 등, 체액이나 시체를 연상시키는 동물과 곤충들도 혐오의 대상이 된다. 로진은 모든 혐오의 근저에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의 오물과 악취에 대한 혐오가 깔려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중략) 사람들이 혐오하는 것은 죽음 및 부패와 관련된 동물성이다 .(53쪽)
하지만 누스바움의 원초적 대상 혐오 또한 학습에 의해 형성될 수 있으며, 모든 원초적 대상 혐오 실질적 위험으로 언제나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b) 투사적 혐오:
원초적 대상에 대한 혐오는 이후 이성적 검토를 거의 거치지 않고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확장된다. <혐오에서 인류애로>의 제목에서 거론되는 ‘혐오’는 바로 ‘투사적 혐오’를 지칭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누스바움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혐오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투사적 혐오로 이것이 사회 구성원 중 몇몇을 ‘오염원’으로 규정하고, 그것이 사회적 기준이 될 때에 발생된다. 이때 원초적 혐오 대상과 특정한 집단을 하나의 유비관계로 만듦으로써 사회적 낙인 효과를 만들어 낸다.
투사적 혐오는 대부분의 혐오정치를 생산해내는 하나의 ‘이중적 망상’이라고 누스바움은 주장한다. 이중적 망상은 1) 다른 사람의 더러움에 대한 망상 2)자신의 깨끗함에 대한 망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둘 모두가 위계의 정치에 이바지 한다.
위와 같은 순수-타락(오염) 도식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유대인에 대한 수많은 혐오와 망상은 ‘순수민족’ ‘사회통합’이라는 하나의 완성된 기표 아래서 자행되었다.
원초적 대상 혐오와 투사적 혐오를 구분짓는 기준이 있다. 투사적 혐오에서 오염은 물질적 차원이 아닌 상상적 차원에서 일어날 뿐이다. 이것은 제시한 것과 같이 특정 집단에 역겨운 속성을 부여하여 그 집단을 열등한 존재로 격하시킨다(60쪽 참고).
역겨운 속성을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전가하는 투사적 혐오는 여려 형태를 취하는데, 이른바 혐오스러운 집단이나 사람을 어떻게든 혐오의 원초적 대상과 연관시킨다는 점만은 같다.(55쪽)
이상과 같이 논의한 혐오 이론들이 실제 역사속에서 어떤 식으로 발혀되었는지 확인하는 절입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 나치의 유대인 혐오 등의 사례에서 데블린과 카스의 주장이 어떤 식을 반박되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장에서 중요한 부분은, 혐오정치로 점철된 위계의 문화가 하나의 본질 “문화는 마치 본성인 것처럼”(66쪽) 세팅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책의 목적은 투사적 혐오가 비이성적 망상에 의존한다는 점과 불공정한 위계질서를 만드는 경향으 띤다는 점을 보이고, 그렇기에 평등한 시민들로 이루어진 국가에서는 투사적 혐오를 적절한 입법의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점을 논증하는 것이다.(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