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언어의 충동에 사로잡힌 글쓰기는 역사적 글쓰기와 분리되지 않는다"
낙원에는 수다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르게 말하자면 완벽한 구원의 세계는 수다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언어가 분열을 멈추고, 모든 사태를 꿰뚫을 수 있는 신적 언어로 돌아갔을 때 모든 것은 단번에 직관된다. 사랑을 속닥이는 말 속에는 어떠한 잔여도 없다. 사랑은 신적 언어 속에서 언어 그 자체로 전달된다. 그러므로 낙원에는 세레나데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의미에서의 소통의 자리 또한 없다. 그러나 인간 언어의 세계는 '말'이 표류하는 수다스러운 세계다. 귀를 닫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눈 앞에 펼쳐진 텍스트를 분절적으로 읽어낸다. 말은 스스로를 의미에서 미끄러뜨리며 증식한다. 더미, 그러나 말-더미는 말해지지 않은 것의 다른 이름이다. 기호라는 차가운 언어관은 그 속에 요지부동하게 남아 있는 '말해지지 않는 것'을 남겨 놓는다. 인간 언어가 일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자신의 가능성일지도 모른다. '사랑해'라는 말의 뒷말이 그토록 아쉬운 것은, 표현되지 않은 채 잔존하고 있는 다른 '사랑'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언어가 시적일 수 있는 것은 '말해지지 않는 것'의 '말해짐'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드러나지 않은 잔존에 의해 존재하고, 글쓰기는 그 한계의 언저리를 배회한다.
모든 빛이 모든 이의 얼굴에 내려 앉은 낙원에 대한 노스텔지어가 있다. 그리고 보편성이라는 바닷물에 희석되지 않을(않아야 할) 얼굴도 있다. 역사를 생각함은 이 얼굴을 기억하는 것이다. 역사라는 거대 기관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발아래 묻힌 작은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고 이름 붙여야 한다. 우리가 무한의 이름으로 불러야할 시간은 윤리와 역사의 시간, 그리고 글쓰기의 시간이다. 시적 언어의 충동에 사로잡힌 글쓰기는 역사적 글쓰기와 분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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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신내역 오혜
출판사 : 히스테리안 / 판형 : 210mm x 130mm / 표지 : 유광코팅, 내지 : 모조지
페이지 : 140쪽 / 출판년도 : 2018 / ISSN : 2586-7326
판매가격 :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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