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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창원 Jan 28. 2023

사랑의 Theme : 창백한 푸른 점


"오랫동안 잠잠한 호수 위에 나뭇잎이 떨어졌습니다. 계속 고요할 줄만 알았던 물의 표면에 작은 파동이 일고, 파동은 점점 확장되어 갑니다. 사방으로 뻗어간 물결의 흐름을 막거나 돌리는 일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사랑이 그런 것 같습니다. 예상할 수도 없고, 준비할 새도 없이 불현듯 찾아오는 신비한 사건입니다. 지극한 우연의 농락에 휘둘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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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월, 귀국 후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위해 저작권협회 가입 및 예술인증명 등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디지털 싱글로 한 곡을 발매하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음악학교를 다닐 때 어느 학기의 기말 심사회곡으로 작업한 곡이었는데 당시 뛰어난 학교 친구들이 연주해 준 덕분에 조금 다듬어서 발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디지털싱글 「HANABI」 Album Art, 2022



이후 바로 한 해의 과제를 선정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과제라고 해서 그럴듯한 것은 아니고, 

일 년 동안 내가 무엇을 할지, 어떤 것을 연습할지, 어떤 목표를 이루어 나갈지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숙제입니다. 당시 관심을 가지던 음악이 피아노 삼중주였습니다. 특히 평소에 사랑하는 작곡가 Ryuichi Sakamoto의 「1996」 앨범에 푹 빠져있던 때라 저도 3중주 앨범 작업을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坂本龍一(Ryuichi Sakamoto)


아무래도 작곡과에 다니면 큰 편성의 오케스트라를 위주로 공부하기 때문에 실내악이나 작은 편성의 악곡을 깊이 있게 공부하기가 어렵습니다. 흔히들 편곡해야 할 악기의 개수가 적으면 작업의 난이도가 낮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용할 수 있는 소스가 많으면 한계를 고민하지 않고 작업할 수 있습니다. 작은 사운드를 원한다면 많은 악기를 쉬게 하면 될 것입니다. 

Beethoven Symphony No.9 총보 중 일부, 全音楽譜出版社



또 하나의 부담은 저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학교 과제로 작업한 곡의 결과물이 좋지 않다고 해서 큰일 나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충분히 실수해 보고 망쳐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졸업 후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작곡가가 되어 처음으로 내는 개인 앨범을 망칠 수는 없습니다. 공부에 충분함은 없지만 그래도 확실히 공부를 해두고 작곡에 착수하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겨울과 봄을 공부하며 보냈습니다. 


고전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피아노 트리오 곡이 있고, 될 수 있는 한 주요 작곡가 및 악곡을 정말 많이 분석하고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Debussy와 Ravel의 삼중주와 소나타를 공부하며 앨범의 방향성을 정했습니다. Debussy의 독특한 선법 사용과 4도 화성 등 기존의 독일 화성 체계와는 다른 색다른 울림에서 도움을 받았고, 피아노의 양손과 바이올린을 각각 별개로 생각하며 진행하는 Ravel의 독창적인 바이올린 소나타의 천재성을 빌려오기도 했습니다.

Claude Debussy, Maurice Ravel



그중 첫 번째 곡 「창백한 푸른 점」은 제가 느끼는 사랑이라는 주제로 작업한 사랑의 Theme입니다. 학교 동기에게 들려주었더니 "너는 참 이상하고 변태 같은 사랑을 한 것 같아"라고 합니다. 거친 워딩인 것 같지만 그보다 큰 걱정은 보편적인 공감을 얻어낼 수 없다는 말로 받아들였단 것입니다.

 

제게 사랑은 우연히 찾아왔던 것 같습니다. 계획적으로 실행한 사랑은 없었고 잘 됐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신기한 일이라고 느꼈습니다. 아주 희박한 확률로 우연히 태어나고 자리 잡은 지구 위에서 전혀 모르고 살던 사람에게 사랑을 느낀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 2023 RIAK

Released on: 2023-01-06


Credit 

Piano by 김강태 

Violin by 김지영 

Cello by 박주영

All songs composed and arranged by 정창원 

Recording Engineer 송근영 at [yu:l]HAUS 

Mixing & Mastering Engineer 장성학 at [yu:l]HAUS 

Album Art by HongH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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