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프롤로그

떠나야 하는 이유

by 신발끈

인생은 고통이다. 삶의 무료함과 무의미를 견디기 힘들었다. 굳이 애를 쓰며 살아야 하는가. 분노와 불안이 턱 밑까지 차오르면 여행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또 나를 괴롭힌다. 더 이상 가고 싶은 곳이 떠오르지 않는다. 낯선 곳에서 조마조마한 상황이 생기는 것도 겁이 난다. 알지 못하는 장소에서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몸과 마음을 편히 두고 오면 되겠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힘들게 떠난 곳에서 뭐라도 건져야 하지 않겠냐고 나를 다그친다. 또 알 수 없는 곳에서 주위의 눈치를 보며 같은 생각을 수백 번 하게 될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굳이 떠나야 하는가. 올해로 회사생활이 5년이 넘어간다. 업무를 익히고 분위기에 적응하기 충분한 시간이다. 모든 업무에 서툴러 마음 졸이며 전전긍긍했던 입사초기의 공포와 불안은 지나왔다.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과 그럴듯한 복지의 달콤함에 젖어갔다. 무엇보다 정년이 보장되는 자리이다. 계약만료의 두려움에서 드디어 벗어났다. 제법 괜찮은 사람이 된 듯한 자신감이 생겼지만 알 수 없는 공포와 불안은 끝나지 않았다. 여기에 계속 머무르다간 나의 존재가 무너질 것 같았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가', '이게 정말 행복한 삶인가'를 자주 되뇌었다.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나는 과연 이곳을 스스로 빠져나올 만큼의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 그렇다고 일이 힘든 것은 아니다. 그저 무의미에 지쳐갔다. 그것이 여행의 이유였다.

일주일의 휴가를 내었다. 동료들은 나를 '자유로운 영혼'이라며 부러워한다. 잠시 어깨가 으쓱해진다. 얽히고 설킨 관계들, 덕지덕지 붙은 불편한 감정들을 툭툭 털어버릴 수 있을까. 나는 어쩌면 '자유'에 집착하고 있는 영혼을 아닐까. 자유로워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가식적인 영혼.

마침 발리로 바로 가는 저가의 직항편이 있었다. 이동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버겁다. 마흔 중반을 지나며 좁은 비행기 좌석에 몸을 비집어 넣고 오랜시간 버티는 것이 쉽지 않다. 이동을 하면 다음날 하루는 온전히 쉬어야 여행을 소화할 수 있다. 나의 일상과 떨어져, 아주 먼 곳에서, 늦잠을 자고, 산책을 하고 책을 읽는 것으로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것이 발리이든, 유럽이든, 아프리카든 상관이 없을 것 같았다. 힘들게 쥐어 짜내며 사는 인생에 질려버렸다. 이번 여행마저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신들의 섬'이라고 불리는 발리에 가면 나의 몸과 영혼에 진정한 휴식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선한 채소를 먹고, 요가를 하고, 노마드들과 어울리다 보면 나의 집착도 희미해지지 않을까. 그냥 생각을 좀 필요한 시점 같았다. 회사를 얼마나 다닐지, 앞으로 어떻게 벌어먹으며 살아갈지 정리가 필요해 보였다. 정신없이 일하며 앞만 바라보고 살다 보니 많은 것을 놓친 것 같았다. 자유롭게 세상의 흐름에 나를 맡기며 살면 될 거라고 마음먹었지만 그랬더니 점점 세속적인 욕망이 차오르고 시선이 편협해지는 것 같았다.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었다.

발리에 가면, 여행을 떠나면, 지금의 답답한 삶을 잠시 중단한다면, 방법이 생기지 않을까. 깊이 생각하다보면 실마리가 잡히고 가뿐하게 정리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니까. 상황에 나를 밀어넣어 봐야겠다.

그렇게 7시간을 날아 발리로 왔다. 이곳에서 내 마음은 어떻게 머무르고 흘러갈까.



[발리 여행자를 위한 tip]

발리는 국내에서 7시간이 걸리고 태국, 베트남 등의 동남아와 또다른 느낌을 지니고 있다. 부산에 거주하시는 분들은 발리 직항이 없어지기 전에 가보시기를 추천한다. 직항노선은 1~2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없어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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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