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 게으르고 멍청한 여행자

택시 바가지에 세상이 무너진다.

by 신발끈

언제부턴가 나는 여행준비를 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다. 여행지에 무엇이 있는지, 어떤 식당이 유명한지, 교통편이 어떤지 찾다 보면 준비할 것이 너무 많다. 모든 것을 준비하다 보면 출발도 하기 전에 진이 빠지기 일쑤였다. 여행에 대한 설렘보다는 불안감이 커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준비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리고 완벽한 준비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것을 준비해도 여행지에 도착하면 모든 것이 틀어지기도 했다. 첫날의 숙소를 예약하는 정도에서 준비를 끝냈다.

이번 발리 여행도 그랬다. 한 달 전에 항공권을 예약하고는 잊고 있었다. 출발 이틀 전에 겨우 숙소를 예약했다. 작은 배낭에 들어갈 가벼운 옷가지를 챙겼다. 혹시 더 필요한 것이 생기면 현지에서 사면되겠지. 사람이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가 아니겠어. 비자도 공항에서 사고, 환전도 공항에서 하기로 한다.

비행기 출발이 지연되어 밤 12시가 되어 도착을 했다. 다행히 공항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비자발급까지는 어찌어찌해냈다. 인터넷으로 구입해 둔 인도네시아 e-sim 설치에 애를 먹었다. 설명서를 차분히 읽으며 한 단계 한 단계 실행해야 하는데 마음이 불안하다. 작은 글씨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리고 전자입국신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신고서는 온통 인도네시아 말이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여행자의 감각으로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호들갑을 떨며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해 겨우 입국심사를 통과했다.

늦은 밤이지만 공항의 환전소 문을 열려 있었고, 조용한 환전소에서 돈을 바꿨다. 100달러짜리 한 장을 내밀고 100,000루피아 15장을 받았다. 이게 싼 건지 비싼 건지에 대한 감각은 전혀 없다. 바깥공기를 쐬고 싶었다. 빨리 나가서 담배를 피워야지. 그랩도 깔아야 하는데. 숙소 주소는 뭐였더라. 인터넷이 안되는데.... 이런저런 걱정을 하며 공항을 빠져나가는데 중년의 아저씨가 다가온다.

"여기서 담배 피우면 돼, 어디서 왔어? 어디로 갈 거야?"

그래, 호객이 붙는구나. 상냥하게 물어보는 아저씨의 인상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영어 발음도 유창했다. 나는 핸드폰 캡처 화면을 뒤져 호텔의 위치를 보여주었다.

"여기까지 얼마야?"

아저씨는 공식홈페이지(?)처럼 보이는 페이지를 보여주면서 '공식적인' 비용이 700,000루피아라고 한다. 그게 얼마 정도일까. 담배연기를 빨며 집중해 보려고 했지만, 머리는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따지고 싶지 않았다. 인터넷은 아직도 터지지 않는다. 돈 몇 푼에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아 졌다. 몇 푼을 아끼겠다고 이리저리 가격을 흥정하는 것은 현지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나. 참으로 게으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싶은데로 생각해 버린다. 빨리 숙소에 도착해서 쉬고 싶었다. 열심히 살고 있는 인상 좋은 아저씨에게 보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른다. 담배꽁초를 비비며 그에게 말했다. "그래, 나는 당신과 같이 갈게."

유니폼을 입고 있던 아저씨는 신이 나 보였다. 자기 차에서는 원하면 담배를 피워도 된다고 했다. 나는 이미 충분하다고 했고 아저씨가 순진하다고 생각했는데 순진한 건 바로 나였다. 에어컨이 켜진 택시에 앉으니 그제야 머리가 돌아간다. 100달러를 바꿔 15장을 받았는데 이 아저씨에게 7장을 주어야 한다고? 택시비가 6만 원에 이른다고? 뭔가 잘못되었지만 되돌릴 순 없었다.

기사 아저씨는 연신 신이 나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를 한 거지만 되돌릴 순 없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아무 말 없이 준비한 돈을 내밀었다. 땡큐 땡큐! 즐거운 여행을 하라며 기사는 나의 돈을 손에 들고 총총 사라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차의 뒤꽁무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었다.

호텔 카운터의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나는 택시비로 7만? 7백? 루피아를 줬어. 이거 비싼 거야. '0'이 엄청나게 붙은 가격을 읽는 것이 어려웠다. 70만을 영어로 어떻게 읽어야 하지. 밀리언? 따우전드? 헌드레드? 멍청하게 어버버 거리는 나에게 직원은 그건 너무 비싸다고, 기사는 어디 있냐고 묻는다. 보통 300(3 헌드레드 따우전드!)이라고 보여준다. 영어로 큰 숫자를 읽는 것은 아직도 나에게 어려웠다.

"그는 이미 떠났어. 그는 운이 아주 좋아."

나는 무심하게 그는 운이 좋고, 나는 그저 운이 나쁘다고 말하고 방으로 올라왔다. 태연한 척 굴었지만 방에 도착해서는 잠에 들지 못했다. 현지 물가를 미리 검색했었다면, 그랩을 미리 깔아 두었다면, 아니 택시 비용을 흥정이라도 했었다면 이런 멍청한 일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사실은 날아가 버린 돈이 너무 아까웠다. 대중교통을 타고, 값싼 숙소를 뒤지며 비용을 아끼려고 한 나의 모든 노력도 함께 날아가 버린 기분이었다. 호들갑 떨지 않는 여행의 능력자인 척 굴었던 것도 허세였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고작 6만 원을 날린 나는 발리가 싫어지고, 여행이 싫어졌다. 멍청하게 당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런 기분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씻을 기운도 없었다. 배가 고팠지만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침대에 멍하니 누워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발리 여행자를 위한 tip!

입국비자는 공항에서 간단하게 이루어지니 굳이 미리 하지 않아도 된다. 카드, 달러, 인도네시아 루피아 모두 가능하다. 단, 전자입국신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 미리 인터넷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 공항 와이파이가 잘되지 않고 영어로 된 전자입국신고서 QR코드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는데 공항직원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았다.

택시 흥정에 자신이 없다면 그랩을 이용하는게 좋다. 공항에는 그랩이용자를 위한 휴게소가 마련되어 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1화[발리에서 생긴 일]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