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생긴 일]사누르의 해변

그리고 환전 사기

by 신발끈

발리의 오래된 여행지 사누르에 왔다. 이곳의 5월은 평화롭다. 우기가 지나면서 태양은 뜨겁지만, 시원한 바람이 불고 있다. 택시 바가지로 인해 잠을 설치고 기분은 계속 상해있었지만 일단 밖으로 나왔다. 무작정 해변을 향해 걸었다. 걷기 좋은 산책로와 예쁜 카페가 잘 조성되어 있다. 모래밭에 테이블을 차린 한적한 식당에서 '여행자의 조식'을 먹었다. 커피는 부드러웠고, 나시고렝은 적당했고, 과일은 상큼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두어 시간을 보냈다. 온종일 앉아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책을 읽다가 말다가, 노래를 듣다가 말다가, 멍하니 시간이 지나간다.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이 여행 모드로 바뀌었다. 나는 두서없이 여러 가지를 떠올렸고, 지나간 사랑과 오지 않은 희망을 되뇌었다. 기분이 간질간질 해졌다. 다시 뭐라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괜찮은 것 같다. 여행은 정말 좋구나.


IMG_2190.jpg 여행자의 조식

저녁은 야시장에서 먹어야지. 걸어서 40분이 걸리는 길이다. 지도와 시계를 보지 않고 느리게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도착해있다. 현지 음식이 입에 맞았다. 루피아에 대한 개념도 생겼다. 말할 때는 뒤의 '0' 3개를 때고, 한국 돈으로 어림직작할 때는 '0' 1개를 때면 간단해졌다. 다음에는 또 잊어버릴 테니 어디 적어두거나 기억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여행지에서의 정보는 일회용이니까. 그래도 어젯밤의 바가지가 떠올라 앞으로는 꼼꼼하게 가격을 따져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환전을 한 번 더 해야 하는데 거리의 환전소는 금액이 천차만별이었다. 공황의 환전소가 많이 비싸긴 했다. 보통 1달러에 15,900 정도 쳐주는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눈에 띈 환전소는 100달러가 16,450루피아라고 되어 있다. 놀라운 가격이다. 그래, 여기서 환전을 해야겠다. 내가 100달러는 내밀자 환전소 직원은 달러를 돋보기를 들고 유심히 확인한다. 그리고 환전할 루피아도 꼼꼼하게 몇 번이나 세어본다. 여기서는 50,000짜리 지폐를 32장을 받았다. 100,000짜리 지폐를 받으면 좀 더 수월했을 테지만 작은 단위의 지폐가 더 씀임이 많으니까. 나는 두툼한 지폐를 받아 안전하게 챙겨 넣었다. 돈을 아낀 것 같아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에 들러 맥주와 간식을 샀다. 부지런히 걸었다. 깨끗하게 씻고 맥주를 마셔야지. 어제의 바가지는 잊어버리자고. 이제 새로운 여행이 시작된 거야.

방에 도착해서 씻고 맥주를 마시며 짐을 정리한다. 50,000짜리 지폐뭉치를 세어보니 22장이다. 10장이 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나는 다시 가방과 호주머니를 샅샅이 뒤진다. 슈퍼마켓에 흘린 걸까. 그게 아니라면... 환전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머릿속으로 오늘 저녁의 일들을 하나하나 복기해 본다. 5만 원가량의 돈이 사라졌다.

혹시나 인터넷으로 '발리 환전 사기'를 검색해 본다. 몇몇 수기가 있다. 발리의 환전소 사기. 그들의 대표 수법으로는 여행자가 헷갈리게 50,000짜리 지폐를 이용한다고 한다. 내가 본 수기의 당사자는 지폐가 2장 빠져있었다고 한다. 나는 10장을 잃었다. 대담한 사기꾼은 내 눈 앞에서 10장을 가져갔구나. 어떤 타이밍에 돈을 가져간 걸까. 눈을 감고 그 순간을 떠올려본다. 나는 10장씩 3번을 세었고, 돈이 차곡차곡 놓았다. 그 사이 직원은 환율을 계산기로 다시 보여주었고, 결혼은 했는지 물었고, 왜 혼자 다니냐며 웃었다. 나는 '개인적인 이슈'라고 말했다. 참으로 멍청한 대답이다. 이번에는 돈을 아껴보려는 욕심이 사기로 이어졌다. 맥주가 맛이 없어졌다. 나는 도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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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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