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일기

여행 정보는 아닙니다만, 첫째 날

by 장성자

가족들은 황당해했다.

갑자기 제주에 가겠다니, 추석 연휴 열흘을 혼자 제주에 가겠다니 놀랄 만도 하다.

하지만 "글 좀 쓰고 올게."라는 나의 말에 가족들은 찬성도 반대도 아닌 어정쩡한 표정을 짓는다.

딱히 반대할 명분이 없다.

내가 제주에 가야 할 명분은 분명했다. 이럴 땐 작가라는 직업?이 좋기도 하다.


긴 연휴를 얼렁뚱땅 보내기 싫었다. 열흘이면 내팽개쳐둔 원고를 정리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갑자기 비행기 표를 구하자니, 표가 거의 없었고 비쌌다. 비교하며 표를 구할 수도 없었다. 취소표가 나오는 걸 얼른 결제했다. 여행하러 가는 거 아니고, 숙소에서 글만 쓸 거니까 비행기표가 비싸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는 꼭 가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몇 년 전,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을 지도로 찾아서 보는데 내가 놀던 바닷가 바로 앞에 펜션이 있었다. 제주도가 관광지로 변하면서 우후죽순 생겨난 숙소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제주도 중에서도 시골인 그곳에 생뚱맞게 생긴 펜션이 아쉽기도 했다. 내가 그리워하는 내 고향 풍경을 망치는 것 같았다. 그렇기도 했지만 또 달리 생각하면, 언젠가 그 숙소에서 머물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동안 제주에 오면서도 이 숙소는 올 수 없었다. 강연을 갔던 학교 근처도 아니었고, 관광지도 아닌 곳에 있는 숙소였고, 나는 꼭 혼자 이 숙소에 머물며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놀던 바다를 보며 글을 쓰고 싶었다. 걸으며 바다를 또 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추억을 어루만지고 나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공항에서부터 버스 두 번을 갈아타고 내가 태어나고 자랐고, 떠났던 마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할머니와 내가 살았던 집의 담벼락이 보였다.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나는 할머니께 인사했다.

'할머니, 나 와신게...'


도로를 건너 바닷가로 내려갔다. 어린 시절 놀러 다녔던 친구네 집들이 다른 모양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내려가는데 어르신들 몇이 보였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혹시나 친척 눈에 띌까 봐.

내가 이곳에 지금 온 건, 남편과 아이들만 아는 비밀이다.


쫄랑쫄랑 바다로 뛰어다니던 길을 따라 내려가니, 바닷가 바로 앞에 숙소가 있었다.

펜션 2층에서 보니, 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창문으로는 한라산도 보였다.

짐을 풀고, 바닷가를 오가며 할머니와 어린 나에게 또 인사했다.


나는 지금 바다를 향해 책상을 놓고, 글을 쓰고 있다.

풀벌레 소리인지, 가가비(개구리) 소리인지 계속 들린다.

예전에 이곳은 가가비가 엄청 많이 살던 곳이다. 바다와 밭 사이에 논처럼 물이 고여 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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