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건너다닌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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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성자

쓰고 보니, 판타지 동화의 제목 같기도 하다. 판타지 속 아이라면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 바다를 건너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깊으면 깊을수록, 풍랑이 세면 셀수록 더 재밌고 두근두근 거리는 이야기로 주인공의 캐릭터를 더 살렸겠지. 하지만 나의 바다는 현실이었다.


제주도와 부산 사이의 바다, 이 바다를 서너 살 때부터 건너 다녔다. 나는 할머니와 둘이 살았고, 부모님은 부산에서 살았다. 많은 제주 사람들이 제주를 떠나 육지에서 돈을 벌면서 정착할 때였다.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할머니 손을 잡고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갔었다. 동화에선 풍랑 속에서도 바다를 해쳐 나가지만, 현실에선 파도가 높으면 연안부두에 갔다가도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할머니는 우리가 배를 타건 안 타건, 늘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파도의 높이에 주의를 기울였다. 1~2 미터면 잔잔한 파도고, 3~4 미터는 높은 파도다. 나도 덩달아 파도 높이에 관심을 가졌는데, 가만히 누워 있는 방인데도 그날의 파도가 3, 4 미터라면 괜히 울렁거리곤 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나는 부산으로 전학을 갔다. 할머니를 두고, 부모님과 동생들과 살게 되었다. 갓난쟁이일 때 부모님과의 이별은 생각나지 않지만, 아홉 살 때의 이별은 힘들었다. 밤마다 꿈마다 나는 파도를 타고 제주로 가곤 했다. 그러다 방학이면 나 혼자 진짜 배를 타고 부산과 제주 사이의 바다를 건너 다녔다. 주로 카훼리 호라는 여객선을 탔다. 널찍한 3등 칸에 들어가자마자, 네모난 베개와 분유 깡통을 내 옆에 가져다 두었다. 멀미가 없어서 분유 깡통을 잘 쓰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했던 대로 미리 챙겨두었다. 여러 사람이 넓은 마루 같은 데서 잠을 자던 카훼리 3등 칸 시절이다.


새벽이 되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면, 사람들이 짐을 챙기고 있었다. 나도 짐을 챙겨 갑판으로 나가, 아직 뿌연 새벽에 짭짤한 바다 냄새를 맡으며 한라산의 형체가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날이 점점 밝아지면서, 한라산이 눈앞에 나타날 때면 기쁘고 설렜다. 마음 저 밑에 꼬불쳐놓았던 그리움이 훅 풀어지던 순간이다.


할머니와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부산으로 갈 가방을 챙기며 나는 부산으로 가기 싫어 할머니에게 오만가지 투정을 부렸다. 할머니는 손주를 달래랴, 파도 높이를 들으랴 바빴다. 아니 바쁜 척했다. 할머니와 나는 그리움을 또 꼬불치며 연안부두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에게 제주도는 판타지의 공간이고 부산은 현실의 공간이 아니었나 싶다.

어쩌면 나는 현실과 판타지 세계를 오가듯 바다를 건너다닌 아이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