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소극적 저항> 이면의 이야기
<소극적 저항> 이야기
작품〈소극적 저항〉은 투명 아크릴판을 지지체로 사용하여 앞면과 뒷면이 하나의 화면을 이루도록 구성한 작업이다. 두 면의 이미지는 서로 겹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작품의 뒷면은 신문지 콜라주로 이루어져 있다. 재료가 된 신문 기사들은 작가와 한 청소노동자(이하 그분) 가 함께 신문을 읽은 뒤 각자가 ‘찢고 싶은 기사’를 선택하여 찢어낸 것들이다. 이렇게 찢은 신문 조각들은 투명 아크릴판에 붙여졌고, 그 기사들의 내용은 작가가 따로 수첩에 기록해 두었다.
신문 읽기는 그분의 개인적인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약 10년 전 남편의 사업 실패 이후 그는 약국 앞에서 붕어빵 노점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때 약사가 읽고 난 신문을 건네주었고, 그분은 신문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작품에 사용된 신문 기사들은 이 기억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분이 찢어 건넨 기사들은 일종의 수업료처럼 작가에게 전달되었고, 그 신문 조각들은 작품의 재료가 되었다. 작가는 이 기사들을 투명 아크릴판의 한쪽 면에 콜라주로 붙인 뒤, 그 반대편 면에 벽돌 담과 그 사이에서 자라는 잡초를 그렸다.
이 작업에서 화면의 앞과 뒤는 서로 다른 층위를 형성한다. 신문 기사들은 사회적 사건과 현실의 언어를 담고 있으며, 그것은 아크릴판 뒤편에서 희미하게 비쳐 나온다. 반면 관람자가 먼저 마주하게 되는 앞면에는 단단하게 쌓인 벽돌 담과 그 틈에서 자라는 작은 잡초가 그려져 있다.
이 잡초는 작가의 작업실 옆 담장에서 실제로 자라고 있던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사진으로 기록해 두었는데, 이웃 역시 같은 잡초에 눈길이 가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그 이미지가 이 작업의 모티프가 되었다.
벽돌 담의 이면에는 찢고 싶은 현실의 기록들이 놓여 있다. 그 현실은 때로 견고하고 무거운 권력의 담장으로 서서 작가를 무력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주저 앉도록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 틈 사이로 작은 잡초들이 자라난다. 잡초는 벽을 무너뜨리거나 뒤집지 않는다. 다만 좁은 틈에서 조용히 생존한다.
작가는 잡초의 담 벼락 생존을 보며 통해 일상의 자리에서 지속되는 작고 조용한 생존 저항에 주목한다. 벽돌 틈에서 자라는 작은 풀들은 그 자리에서 끝내 살아남는다. 살아 남아 장벽의 균열를 꿈꾼다.
작가는 이러한 잡초의 태도에서 ‘소극적 저항’의 의미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