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잡동사니, 그림의 기억
토요일 전시회 설치를 마치고 집에 와서 술을 먹었다. 언제부터인지 혼자 마시며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한다. TV를 보고 유튜브보고 다른 스마트폰으로 당근을 뒤적인다.
88년의 김현식 LP를 만났다. 김현식은 라디오에서 비처럼 음악처럼으로 만났다. 아버지가 사 오신 워크맨 밖에 없어서 88년 까지는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들었다.
고등학교 2학년은 공부하기 너무 싫었고 몽상에 빠져 학과와 관련 없는 사회과학책을 뒤적거리면서 뜬구름 속을 걸어 다녔다. 친구의 집에서 턴테이블을 보고 나서 나는 텐테이블이 있는 오디오를 사달라고 부모님을 졸라서 2학년 여름이 지난. 가을에 가질 수 있었다.
가을이 겨울로 가는 시기 나는 야간 자습을 처음으로 탈출했다. 티브이에서 김현식의 콘서트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그대 내 곁에'를 그때 들었다. 오디오가 생겼지만 처음 산 레코드판은 김현식이 아니라 전인권 2집, 최성원 1집, 최구희 1집 등 들국화 멤버들의 독집을 샀다. 김현식은 90년 죽음으로 갔지만 그의 전성기 앨법인 3집과 4집은 사지 않았다. 그런데 50이 되고 60을 바라보니 '그의 언제나 내 곁에'가 더 그리워졌다.
2000년 30이 넘어서 나는 늦깎이 대학원생이었고 아무런 직업도 없이 그저 고교시절의 이상을 이어서 실천하는 활동가였다. 시건방과 치기만 있던 그 시절 그때 나는 내가 부르는 '언제나 그대 내 곁에'를 정말 좋아하는 한 여자를 만났다. 그리고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조건의 격차를 너머 그녀와 결혼했다.
술 취한 토요일 오후 나는 언제나 내 곁에를 다시 만났다. 일요일 오전 음주로 힘겨운 몸을 이끌고 한 교회 앞에서 다시 김현식을 만났다.
이상도 열정도 지독한 폭주뒤에 찾아온 숙취처럼 늘어져 버렸다. 2026년 88년의 김현식 목소리를 듣는다.
나는 무기력을 털고 일어나 걸어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