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큰 딸 둘과 함께
" 엄마랑 함께 밥 먹고 왔어요."
83세 노모를 모시고 바로 아래 여동생과 함께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면서 셋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며 좋아하는 이는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다. 그녀는 또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웃는 얼굴로 덧붙였다. "앞으로는 한 달에 한 번꼴로 엄마 모시고 맛난 것을 먹거나 가볍게 여행을 하자고 동생이랑 약속했네요."
그녀의 말을 듣고는 나도 무릎을 쳤다.
"그래, 나도 딸이랑 맛난 거 먹으면서 여행을 하자."
애들이 어릴 때는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면서 숱하게 여행을 했건만, 애들이 크고부터는 공부에게 밀렸고, 또 큰 애가 결혼을 하면서 가정을 이루게 되자 내 두 딸과 함께 여행하는 것은 그야말로 언감생심이었다.
그런데 마을 친구 얘기를 듣고 보니 이제는 내게도 때가 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큰딸은 초등 5학년, 3학년을 둔 학부모이고, 또 막내딸은 어려운 공부 중이라 둘 다 짬내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일단 물어는 보자 했다.
"얘들아, 날 잡아서 우리끼리 가족 여행 한 번 할까?"
(여기서 우리끼리란 손자손녀랑 사위 빠고 내가 낳은 두 딸과 우리 부부를 포함한 넷을 일컬음)
딸 둘이 흔쾌히 좋다 해서 하룻밤 묵을 숙소부터 예약했다.
맛집은 애들이 검색하고, 여행에 들어간 모든 경비는 내가 쏠 생각이었다.
딸 둘을 대전역에서 픽업했다.
둘 다 불혹의 나이답지 않게 차려입은 모습이 어려 보이기도 했지만, 다 큰 딸이라도 엄마에게는 그저 애기들이라 보자마자 품에 안았다.
무엇을 먹을지 메뉴를 선택할 때도 어디를 둘러볼지 여행지를 선택할 때도 우리는 불협화음 없는 일체감으로 길들여진 가족임이 틀림없었다.
넷이서 함께 식사를 하거나 걸을 때는 대부분 지난날의 추억이 대화의 중심에 있었다.
그날 밤, 준비해 간 아이스와인으로 건배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또 이야기 꽃을 피웠다. 그중에 막내가 했던
"좋은 기억보다는 안타깝고 힘들었던 기억이 더 생생하게 떠올라."라고 하는 말이 가슴을 쿵하게 하면서 삶의 아픔이 행복보다는 더 끈질기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
다 큰 딸 둘과 낯선 곳에서 밤늦도록 오손도손 이야기 나누는 장면은 내게 참 귀하게 느껴진 행복이고 감사였다.
앞으로는 일 년이면 한두 번씩 내 두 딸이랑 맛난 것도 먹고 좋은 곳도 바라보는 호사를 누리고 싶다.
내 삶에서 이렇게 행복하고 감사할 날이 앞으로 또 몇 번이나 오겠는가?
행복과 고통은 한 몸인지라 또 여러 개의 고통을 감내하고서야 겨우 한두 차례 주어질까 말까 할 것이다. 그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칠 수 있을 테니 우리는 수시로 욕심을 덜어내고 순한 마음을 내야 한다. 그때 행복은 또 예고 없이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