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있다는 것은
이른 아침부터 눈이 내린다.
바깥출입을 포기하고 재봉틀을 꺼낸다.
천에 패턴지를 대고 하얀 쵸크로 본을 뜬다음 재단가위로 조심조심 잘라낸다.
오늘은 여성용 파자마다.
앞판과 뒤판의 겉과 겉을 맞대고 옆선부터 박는다
오버록이 따로 없을 때는 통솔이나 쌈솔이 좋다는 것을 배우고부터 바느질 솜씨가 확실히 달라졌다.
2년 전, 도서관에서 재봉틀을 처음 배울 때만 해도 내가 손수 파자마를 만들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바늘에 실 끼우는 법조차도 몰랐던 내가 재봉틀을 이용해서 소창천으로 행주를 만들고, 또 광목으로는 덮개나 차받침 같은 소품을 만들다가 작년부터는 간편한 파자마까지 만들고 있다. 재봉틀 다루는 것 하며 바느질 솜씨가 일취월장이다.
처음 소창천으로 행주를 만들 때였다. 재단한 소창천을 드르륵드르륵 박고는 뒤집어서 다림질을 하고, 마지막에는 한쪽 귀퉁이에 삐뚤빼뚤 서툰 솜씨로 자수를 놓자 얼추 행주가 되었다. 그렇게 내가 손수 완성한 행주는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고 맘에 쏙 들어 자꾸 웃게 했다. 그때부터 재봉틀 놀이가 재밌고도 즐거워서 자꾸만 만들었다. 차곡차곡 쌓인 여러 장의 행주는 소박한 모습으로 우리 마을 친구들 손에서도 웃었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왜 굳이 바느질?
도서관에서 손 내민 프로그램들은 차고 넘쳤는데 왜 굳이 바느질을 우선으로 선택했을까?
시어머님이 떠올랐다.
어머님은 7남매 자식농사가 끝났겠다 싶으실 때 시골 농사일을 접고 도시에 둥지를 틀면서 재봉틀과 놀기 시작하셨다. 그 때부터 우린 잠자리 날개같은 잠옷 대신에 몸빼바지 같은 어머님표 꽃무늬 파자마를 입어야했다
어머님의 일상이 재봉틀과 한 몸이 되었다 싶을 때는 이웃이나 지인은 물론이고 경비아저씨며 택배아저씨 몫까지도 챙기셨다.
90년을 건강하게 살고 심정지로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이웃에게 파자마를 나눔하셨던 분이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난 어머니의 며느리 아닌가?
그러니 유전자를 받을 리 없다.
유전자보다 더 강력한 게 바로 곁에서 보고 배운 것이 아닐까싶다.
어머님의 선한 영향력을 보면서 닮고 싶고 따라하고 싶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오늘처럼 눈이 오거나 비가 와서 딱히 할 일이 없을 때는 남은 광목천으로 다양한 쓰임의 덮개를 여유 있게 만들어둔다.
누군가에게 밥 한 끼 사는 것처럼 내가 만든 행주나 덮개를 선뜻 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나누다 보면 밥 한 끼보다 정성스러운 덮개나 행주한장이 더 기분 좋게 할 때도 있다.
70이 코앞인 나이에 내 손으로 뭔가를 만든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소소한 기쁨이고 자부심일게다. 거기에 나눔의 재미까지 덧댈 수 있다면 얼마나 근사한 일이겠는가?
자칫하면 외로워질 나이에 재봉틀과 함께 놀 수 있어서 좋다.
내 좋아하는 일로 나눔 할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오늘처럼 눈이 오는 날, 누굴 기다릴 필요 없이 혼자 놀 수 있는 놀이가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