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엔 그 사람이 떠오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비가 얌전하게 내리고 있었다.
마당 몇 곳이 파헤쳐져 있어 사나운 비가 왔다면 흙이 쓸려 내려갔을 텐데, 이 정도라 다행이다 싶었다..
가뭄으로 꽃소식이 더디던 참이라 오래 기다린 참 고마운 단비이기도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우리 부부에게는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혹시 그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싶어 전화를 걸었다.
“광무 씨, 비가 오네. 차 마시러 가도 될까?”
“안 그래도 비를 보면서 선생님이 오시면 좋겠다 하고 있었네요.”
“그래요? 그럼 내가 맛있는 것 좀 사 갈 테니
같이 점심 먹읍시다.”
전화를 끊고 가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여고 후배이자 독서모임 회원인 세아 씨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시간 괜찮아요?”
“좋아요.”
이렇게 해서 계획에도 없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넷은 자리에 앉자마자 포장해 간 음식과
광무 씨가 준비해 둔 옥수수, 수제 만두, 곶감을 나누며 하하호호 웃었다.
1년 전쯤이었을까.
그때도 아마 번개였을 것이다.
세아 씨 부부와 함께 이 집을 찾았던 날이.
“광무 씨, 이 친구 알아보겠어?”
“그럼요. 남편분이랑 오셨잖아요.”
거실에서 다실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며 나누는 이야기들은 가볍게 튀어 오르다가도 어느 순간 묵직해졌다.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걸까?"
누군가 묻자
광무 씨가 말했다.
“사람은 다 자기 별빛이 있어서 각자 빛나고 있는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법륜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토끼나 다람쥐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지 않듯 우리도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는 이야기.
그 생각이 겹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광무 씨는 그런 사람이다.
언제 만나도 편하고, 용기를 주고, 조용히 등을 토닥여 주는 사람.
나보다 어리지만 생각은 더 깊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짓눌려 있던 어깨가 슬며시 풀리곤 한다.
시간은 참 이상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한 서너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린다.
마치 고무줄을 놓아버린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