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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Apr 11. 2020

나만 읽기 아까운 책

안나 '혼자라니 대단히 멋지군요- 술냄새 풍기며 방콕, 타이베이'


아마 지난 연말이었을 겁니다. 어느 술자리에서 안나가 수줍게 책을 내밀었어요.

"언니, 저 책 냈어요.ㅎㅎ"

브런치에 열심히 여행기를 연재하고, 독립출판을 하겠다며 수업을 들으러 다닌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느 사이에 이렇게 멋진 책을 혼자서 뚝딱 만들어 내다니. 정말 기특하고 놀라웠죠. 선물이라며 안받겠다는 걸 '작가는 책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인데 반드시 돈 받아야 된다'며 굳이 만원을 찔러주었네요.ㅎㅎ (참고로 독립출판물 정가는 9천원입니다. 검색하면 나와요)


안나는 2019년에 씀씀 멤버로 들어온 친구였어요. 입담도 좋고, 글발도 좋아서 함께 있으면 괜히 유쾌해지는 멋진 동생이었죠. 제가 원래 칭찬을 좀 남발하는 스타일이긴 하지만, 안나 글을 읽을 때마다 흥분해서 온갖 찬사를 쏟아냈던 기억이 나요. 안나의 글은 한마디로 '완전 내 스타일'이었거든요. 읽는 사람조차도 아프고 괴로운 기억을 끄집어낸 에세이임에 분명한데, 그 유려한 문체에 유머와 페이소스까지 스며있어 아주 울렸다 웃겼다 독자를 흔들어놓는 글이었어요. 이렇게 칭송할 때마다 안나는 항상 머리를 조아렸어요. "아이고 언니 과찬이십니다" "제가 무슨... 저같은 사람이 무슨 작가가 되겠어요"....  그때마다 제 반응은 이거였어요.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작가가 아니면, 누가 작가란 말이냐!"ㅋㅋㅋㅋ


멋진 독립출판물로 완성되었긴 했지만, 고작 100권 인쇄되어 소수의 사람들만 읽을 수 있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죠. 안나에게 전자책 출간을 제의한 건 그래서였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네 책을 읽게 하고 싶어. 나만 읽긴 너무 아깝단 말이야.






술꾼 도시 여자의 대단한 여행



여행지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도시에도 얼굴이 있고, 몸이 있다. 대부분의 유명한 관광지는 곱게 화장한 얼굴만을 보여주고 싶어 하고, 여행자 또한 마찬가지로 여행지의 꾸며진 모습만 보고 싶어 한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갖춰 입고 만난 소개팅 같은 거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기분전환을   있고, 일상으로 돌아갈  있는 동기부여가 생긴다. 그러나 사실은 알고 있지 않은가.  완벽한 화장  민낯의 잡티와 좁쌀 여드름 같은 ? 빳빳하게 다려진 수트 안으로 흐르는 땀과 피지 같은  말이다. 살아있는 인간에게 땀과 냄새, 불규칙하게 솟아나는 털들이 있다는  알지만 외면한다. 혹여나 숨기지 못하면 그것을 예의 없다고 여긴다. 사실, 두세 시간의 소개팅에서는 그러한 위장이 충분히 가능하고, 그리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만약 일주일, 아니 24시간 이상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가능 불가능을 떠나 고행에 가깝지 않을까? 자세는 흐트러지고, 절로 하품이 나오겠지. 방귀는 어떻게 참을 것이며, 화장실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 그러나 분명  친해질 것이다. 깊은 얘기도 나올 것이고, 농담은  진해지겠지. 상대방을     있게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 필시 불편할지라도, 2시간의 소개팅보다는 24시간의 합숙이 ‘서로를  알기 위한 목적  부합한다고   있지 않을까.


안나의 여행기, ‘혼자라니 대단히 멋지군요 읽으며  이런 생각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부제(‘술냄새 풍기며 방콕, 타이페이’) 보면   있듯이  책은 분명 전형적인 관광 도시인 방콕과 타이페이를 여행하며  기행문이지만, 여행지에 대한 정보나 감상은 거의 나와 있지 않다.  책의 내용은 여행지에서  마신 이야기,  마시면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  마시면서 떠오른 과거의 기억이나 상념들이 대부분이다. 읽다 보면 글에서 실제로  냄새가 나는  같다.

방콕과 타이페이는  또한 여러  여행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혼자 여행한 적도 있고, 친구들과 여럿이서 즐긴 적도 있으며, 출장으로 다녀온 적도 있지만 안나처럼 여행한 적은 없다. 그래서였을까.  익숙한 도시들이 낯설게 느껴진 . 오롯이 혼자서,  얼굴로 도시의 밤과 마주한  술꾼 도시 여자는 아무렇지 않게 낯선 바에 들어가 자신에게 맞는 술을 찾아내고, 여유롭게 바텐더들에게 스타벅스 커피를 돌린다. 현지인들에게 “대단히 멋지다 찬사를 들을 만하다.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라든가, 여행에 대한 찬사, 일상 속에서 놓치고 살았던 즐거움과 행복에 대한 얘기는 전혀 없다. 여행은 가끔, 아니 자주 지리멸렬하며, 잊고 살았던 과거의 아픈 기억을 소환하기도 하고, 그래서  자주 술을 부른다.  과정에서 농익어가는 여행이라니.  익은 술처럼, 기분 좋게 취해가는 주당처럼, 안나의 여행은  그렇다. 술에 약한 나는 술로서 깊어지는 감정의 정도를  상상하지 못한다. 안나의 글로 유추해보건대 그건  근사한 느낌임에 분명하다. 직접 경험할  없어 아쉽지만, 괜찮다. 사람마다 생긴 모양이 다르듯 여행의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아니까.  멋진 술꾼 도시 여자가 써내는 대단한 여행기로 대리만족하기로 한다.

-여행 작가 홍아미, <지금, 우리, 남미><그래서 너에게로 갔어> 저자





개인적으로 안나의 글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서평도 자연스레 길어지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글의 힘이 워낙 세기 때문에 사진은 넣지 않기로 했고, 사실 전자책치고는 분량이 상당히 많아서 꾹꾹 눌러담은 느낌이에요. 표지는 독립출판물 만들 때 사용했던 표지를 그대로 실었어요.

ISBN을 따로 등록하지 않고 독립출판을 했다면 전자책으로 제작하기가 무척 쉬워요. 표지 작업도 따로 할 필요가 없고 원고 콘텐츠도 그대로 실으면 되기 때문에요. 독립출판 독자층과 전자책 독자층은 매우 다르기 때문에 독자층을 확장한다는 취지에서 전자책 재출간을 고려해보시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시중에 나와 있는 달달하고 감성적인 여행 에세이를 예상하신다면 충격 받으실 수 있습니다. 대중적인 독자들의 구미에 맞춰 다듬고 편집한 그런 흔한 글이 아니에요. 안나 특유의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문체는 읽어봐야만 그 매력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안나는 지금도 브런치에서 꾸준히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렇게 글쓰기를 좋아하고, 잘 쓰고, 왕성하게 써낼 수 있는 필력이 있는 친구를 작가라 부를 수 없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작가가 될 수 있는지 저는 모르겠네요.


*

참고로, 안나의 술냄새 나는 여행기 2탄, '베를린, 베를리너'도 전자책으로 제작중입니다.


**

안나의 책은 현재 교보문고, 인터파크, 네이버 시리즈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Amiga project

여성 창작자를 응원하는 전자책 전문 출판사입니다.

좋은 콘텐츠를 갖고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투고하세요.

문의 conamiga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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